캡틴 손흥민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큰 수확”

입력 2019-10-17 02:38
29년 만의 평양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17일 오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정말 너무나도 큰 수확이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캡틴’ 손흥민(토트넘)이 유례없이 ‘무관중·무중계’로 치러졌던 험난했던 평양 원정을 치른 소감을 밝혔다.

손흥민을 포함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17일 새벽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했다. 13일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해 14일 북한 평양에 입성한 뒤 15일 북한과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3차전 원정경기를 마치고 다시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이번 북한전에 대해 경기 후 공개된 정보는 많지 않았다. 북한이 취재진과 중계진의 방북을 허용하지 않았고 현지 통신 사정도 좋지 않아 팬들은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뒤늦게 전해지는 경고·교체 소식 정도로 경기 상황을 상상해야 했다. 0대 0의 스코어와 남북 선수 두 명이 옐로카드를 받았다는 것,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가 경기 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남북 선수간 충돌 영상 등을 통해 경기가 거칠게 진행됐을 거라는 유추를 하는 정도였다.

손흥민이 실제로 맞부딪친 북한 선수들은 상상보다도 더했다. 손흥민은 “저희가 아쉬운 경기력을 펼친 건 사실이지만 승점 3점을 못 가져온 건 아쉽다”면서도 “이번 경기는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정말 너무나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거칠었던 경기”라고 돌아봤다. 이어 “저희 선수들은 거의 그런 게 없었는데 그쪽 선수들이 상당히 예민하고 거칠게 반응했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영상에 공개된 충돌 상황은 북한 선수들의 극도로 예민한 반응이 원인이었다. 손흥민은 “선수들이 축구를 하다 보면 충분히 몸싸움 이런 건 당연히 허용된다. (하지만) 누가 봐도 좀 더 거칠게 들어오는 상황이 되게 많았다”면서 “그쪽의 작전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쪽 선수들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북한 선수들은 거친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손흥민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선수로서 말하자면 심한 욕설도 많았다”고 떠올렸다. 기억에 남는 소리를 묻자 그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전력에 대한 평가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북한전에선 ‘정상적인 축구’가 펼쳐지지 못했다. 손흥민은 북한 전력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직접 부딪쳐볼 수 있는 상황이 많이 없었고 선수들이 축구 경기에 집중하기보단 최대한 안 다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며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항상 (경기)해오지 않던 경기장이었고 선수들 부상 위험이 많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선수들도 스탭들도 많이 고생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경기”라며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신 만큼 부상 없이 돌아왔기 때문에 나중에 한국에서 경기할 때 좋은 경기로 승리할 수 있는 게 저희에게는 가장 큰 대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손흥민은 거친 경기를 펼친 북한 선수에 대한 질문엔 불편한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북한 선수들과 유니폼을 교환했냐는 질문엔 “굳이”라고 말했고, 한광성(유벤투스)의 경기력에 대한 질문엔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라고 밝혔다.

대표팀 선수들은 무관중 경기장과 북한의 거친 플레이에도 대표팀의 플레이에 집중했다. 손흥민은 “‘(무관중 상황에) 이 팀이 우리를 강한 팀이라고 생각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걸 신경썼다기보단 저희 경기하는 데 집중하려 했고 잠 자고 먹는데 더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호텔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북한의 통제 상황에 대해서 손흥민은 “통제받는다는 느낌보단 그런 게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경기 하루 전에 들어갔기 때문에 호텔에서 잘 쉬면서 경기할 때 최대한 최고의 몸 상태를 맞추려고 경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잠을 많이 잘 수 있어 개인적으로 좋았고 선수들끼리도 재밌는 웃음거리도 많이 얘기하고 긴장감을 풀 수 있게 자유롭게 얘기했다”고 경기 외 시간을 설명했다.

인천공항=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