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비스, 日에 ‘100년에 한 번 수준’ 폭우 동반…피해 규모 ‘천문학적’

입력 2019-10-16 18:04
지난 13일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하천 시나노가와(千曲川)가 범람하며 물에 잠긴 나가노(長野)현 호야쓰(穗保) 지구의 모습. 연합뉴스

일본에 역대급 피해를 안기고 간 제19호 태풍 ‘하기비스’가 100년에 한 번도 나타나기 어려운 수준의 이례적인 폭우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15일 오후 9시 기준 하기비스가 훑고 지나간 뒤 75명의 사망자와 16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가운데 일본의 경제·산업계도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일본 국립연구개발법인 방재과학기술연구소는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나가노현을 흐르는 강 지쿠마가와와 미야기·후쿠시마현을 지나는 하천 아부쿠마가와 유역에 내린 비에 대해 ‘100년에 한 번도 나타나기 어려운 폭우’라 평가했다.

보도에 따르면 연구소는 각지의 과거 30년간 자료를 분석해 100년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24시간 최대 강수량을 통계적으로 추산했는데, 이번에 이들 두 지역에 내린 비의 양은 이보다 많았다.

지쿠마가와가 흐르는 나가노시의 경우 100년에 한 번 최대 120㎜의 비가 내릴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됐는데, 지난 12일 0시부터 13일 0시까지 24시간 동안 이보다 많은 약 130㎜(기상레이더 해석 기준)를 기록했다. 아부쿠마가와가 흐르는 후쿠시마시도 약 230㎜의 강수량을 보이며 최대 강수량 추정치(180㎜)를 넘어섰다.

이에 일본 기상청은 하기비스가 상륙한 가운데 도쿄를 포함한 13개 광역자치단체에 수십 년에 한 번 발생하는 수준의 큰 비가 예상될 때 내리는 ‘호우특별경보’를 발령했다.

지난 13일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하천 시나노가와(千曲川)가 범람하며 물에 잠긴 나가노(長野)현 나가노시의 모습. 연합뉴스

이렇게 기록적인 태풍이 일본을 휩쓸고 간 사이 일본 경제·산업계에도 큰 피해가 발생했다. 동일본 각지에서 침수로 인해 생활기반과 교통망에 문제가 생긴 것 외에 생산시설 피해도 매우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날 아사히(朝日)신문 보도에 따르면 나가노(長野)시에 있는 버섯 제품 생산업체 ‘호쿠토’의 경우 새송이 생산시설이 침수돼 피해 규모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대형 물류회사들은 전날 태풍 피해지역의 집하 및 배송을 시작했으나 아직 서비스하지 못하는 지역이 남아 있다.

자동차 업계도 태풍의 영향을 받고 있다. 지게차 생산업체인 도요타자동직기는 아이치(愛知)현 다카하마(高浜)시 공장의 가동을 16일 이후 수일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도통신은 고리야마 중앙공업단지 일대에 침수 지역이 많은 상황이고 태풍 피해가 소매업에서 제조업으로도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고속철 '신칸센'이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물에 잠긴 모습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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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관광산업의 큰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수도 도쿄(東京)에서 동해에 인접한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를 잇는 호쿠리쿠(北陸) 신칸센(新幹線) 고속열차의 3분의 1이 침수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탓이다.

특히 2015년 이 노선 개통 후 신칸센 특수를 누려온 이시카와 지역 경기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가나자와 시내의 숙박시설은 예약을 취소한 이들이 12일 450명, 13일 400명에 달했다. 이에 대해 가나자와시관광호텔협동조합 담당자는 “영향이 심각하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출장자도 줄어든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도쿄와 가까워 온천 여행지로 유명한 가나가와(神奈川)현 하코네마치(箱根町)는 단풍철을 앞두고 악재를 만났다. 하코네는 하루 만에 약 1000㎜의 비가 쏟아져 산사태 침수 등이 이어졌고, 철도 운행 중단까지 겹쳐 관광객의 발길이 급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12일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이치하라(市原)시에서 돌풍에 의해 차량이 넘어져 있다. 그 뒤로는 파손된 주택도 보인다. 연합뉴스

다만 하기비스로 인한 전체 피해 규모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와테(岩手)현은 이번 태풍으로 현과 산하 기초자치단체가 관리하는 도로와 하천이 419군데에서 피해를 봤고, 이로 인한 손해액이 적어도 93억4000만엔(약 1017억원) 규모라고 15일 밝혔다.

이렇게 봤을 때 전국적인 기반시설의 피해와 산업·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하면 태풍 피해액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전례 없는 태풍 피해에 따른 추경예산 편성까지 검토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5일 총리관저에서 열린 비상재해대책본부회의에서 “피해를 본 자치단체가 재정 면에서 안심하고 모든 힘을 다해 응급대응, 복구에 나설 수 있도록 필요하면 추경예산을 포함해 확실하게 재정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