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KBS2·이하 동백꽃)은 여러모로 남다르다. 매회 시청률을 경신하며 14%(닐슨코리아)대까지 올라섰다. 수백억 제작비를 들였다거나 ‘막장’ 클리셰를 덧칠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작은 어촌 옹산에서 펼쳐지는 동백(공효진)과 용식(강하늘)의 담백한 사랑 이야기만으로 이뤄낸 성과다.
주점 까멜리아 사장 동백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용식은 폭격에 가까운 사랑 공세를 이어간다. 로맨스 달인 공효진 강하늘의 사랑 연기는 시청자를 단숨에 빨아들인다. 여기에 고두심 오정세 염혜란 등 전 배우들의 호연과 군더더기 없는 연출까지 잘 버무려진 극인데, 흥행의 끌차가 된 건 역시 임상춘 작가의 극본이다.
로맨스가 뼈대인 극에는 소시민에 대한 따뜻한 시선까지 듬뿍 배어있다. 작가 전작이자 아픈 청춘들의 사랑을 그렸던 ‘쌈, 마이웨이’(2017)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어릴 적 엄마 정숙(이정은)에게 버려지고 싱글맘으로 신산한 삶을 살아온 동백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주위의 멸시로 자존감 바닥인 그녀는 “최고로 멋져유”라는 용식의 구수한 고백을 듣고 나서야 조금씩 “고개를 들고 걷기” 시작한다.
같은 처지에 있는 인물들의 끈끈한 관계가 특히 감동을 전하는 부분인데, 정숙과 용식 엄마 덕순(고두심)이 그렇다. 언제나 동백의 든든한 동맹군이 돼주는 게장 골목 회장 덕순은 홀로 용식을 키웠다는 점에서 싱글맘의 고통을 공유한다. 남의 가사 일을 해주며 근근이 살아온 치매 환자 정숙은 동백과 홀몸의 아픔을 함께하는 동시에 혈육 사이로 이어져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이 와중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함께 묻혀낸다는 점이다. 옹산 주 상권인 게장 골목의 박찬숙(김선영) 등 사람들이 동백을 대하는 태도는 꽤나 살벌하다.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이런 모습들은 한층 섬뜩하게 다가온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사회적 약자 혹은 여성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보통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작가의 전작 중 하나인 ‘백희가 돌아왔다’(2016)의 문제의식을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코믹 스릴러 로맨스 등 이질적 장르가 섞이며 빚어내는 오묘한 리듬감도 백미다. 차영훈 PD는 이를 4-4-2 축구 전술에 빗대 “로맨스(4)와 휴머니즘(4), 스릴러(2)가 섞여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 ‘까불이’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이 만들어내는 스릴러는 비중이 가장 작지만 제일 눈에 띄는 요소다. 이야기가 풀어질수록 동백을 향한 까불이의 위협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이는 순경인 용식이 까불이의 목격자였던 동백을 지켜준다며 졸졸 따라다니는 로맨스 장치이면서 추리의 재미를 준다. 온라인에선 향미(손담비) 등 까불이의 정체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동백이 죽지 않는다면 이 장치는 서스펜스를 만드는 일종의 맥거핀인 셈인데, 비행기 추락 같은 굵직한 사건 하나 없는 극의 서사적 단조로움을 효과적으로 보완해준다.
유추해보자면 극은 감동을 위한 예비 작업을 충실히 해놓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백-용식의 로맨스가 이뤄지면서 동백은 잠시 멀어진 덕순은 물론 마을 사람들, 자신을 버린 엄마 정숙과의 극적인 결합을 함께 이뤄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시의성이 상당한데, 죽지 않는다면 그녀는 정체 모를 위협(까불이)을 극복한 여성이면서 자신을 사랑하게 된 한 인간의 은유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갈등이 이처럼 로맨스로 봉합되는 스토리는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 냄새가 사라지는 시대에 이런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야기 전달자로 남고 싶어 필명 외에 어떤 것도 알리지 않는다는 임 작가는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며 행복해하는 걸 보고 작가를 꿈꿨다고 한다. 동백꽃으로 그 꿈이 활짝 꽃피운 셈이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