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소용돌이에 휘말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을 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해임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외정책상 잦은 의견 불일치를 가감없이 밝혔던 그가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내용을 당시 내부자로서 꿰뚫고 있는 데다 이에 대해 격분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은 1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를 진행 중인 민주당이 볼턴 전 보좌관을 잠재적인 ‘청문회 스타’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내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볼턴 전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에 대한 더 많은 증거를 폭로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그를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하는 카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CNN방송도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새로운 악몽”이라고 평가했다.
피오나 힐 전 국가안보위원회(NSC) 유럽·러시아 담당 선임 고문은 전날 미 하원 정보위원회 탄핵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볼턴 전 보좌관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내년 미 대선에 개입하도록 압박한 트럼프 행정부에 반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의 우크라이나 사업에 대해 검찰 조사를 압박한 사실이 드러나 탄핵 위기에 몰린 상태다. 대선 경쟁자를 상처 입히기 위해 외세까지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거세다.
힐 전 고문의 증언에 따르면 지난 7월 10일 볼턴 전 보좌관은 우크라이나에 바이든 조사를 요청하는 방안을 두고 고든 선덜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 대사와 자신의 집무실에서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 선덜랜드 대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압박 작전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변호사 루돌프 줄리아니의 측근이다.
선덜랜드 대사는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 인사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미·우크라 양국 정상회담을 당근으로 제시하며 바이든 부자를 수사할 것을 종용하자고 했다. 힐 고문은 “이를 지켜본 볼턴 전 보좌관은 선덜랜드 대사와 줄리아니,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 관여한 불법행위를 존 아이제버그 NSC 수석변호사에게 알리라고 내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특히 줄리아니에 대해 격분하며 “그는 모두를 날려버릴 수류탄”이라고 혹평하고, 자신은 이들이 꾸미는 어떠한 ‘마약 거래’에도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줄리아니 등이 주도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조사 압박을 마약 거래로 묘사하며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볼턴 전 보좌관을 증인으로 소환하는 일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적극적으로 ‘볼턴 소환’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스티븐 린치 하원의원은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볼턴 전 보좌관이) 줄리아니를 ‘살아있는 수류탄’이라고 불렀다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며 “그는 경험을 토대로 얘기하고 있다.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사람이란 의미”라고 말했다. 피터 웰치 하원의원은 “볼턴은 당신들이 찾고 있는 바로 그 거물급 매파”라고 했고, 게리 코놀리 하원의원도 “청문회에서 볼턴의 얘기를 듣는 것은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청문회 증언을 요청하더라도 볼턴 전 보좌관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볼턴 전 보좌관이 미 대외정책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빈번히 충돌하기는 했지만, 그의 본 정체성은 공화당 진영의 ‘슈퍼 매파’로서 민주당의 외교 노선과 대척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