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남자들이 ‘82년생 김지영’ 별점 테러… 한심해보여”

입력 2019-10-16 13:15 수정 2019-10-16 13:19
영화 '82년생 김지영' 속 한 장면

최광희 영화평론가가 개봉을 앞둔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아주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가 이토록 극찬했던 영화는 전례없다는 평이다.

최 평론가는 16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시사회로 미리 봤는데 할 얘기가 꽤 많다”며 “이 영화 한 편을 놓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현상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그는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에 쏟아지는 별점 테러에 대한 입장을 전했다. 최 평론가는 “(원작 소설이) 베스트셀러였고 최근 대두되고 있는 미투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페미니즘적 활동을 대표하는 듯한 일종의 아이콘처럼 부상돼서 표적이 된 것”이라며 “(별점 테러하는 이들은) 페미니즘에 반감을 품은 대다수는 남성들일 것, 정확히 말씀드리면 찌질한 남성들”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이 작품을 그들이 과연 읽었을까, 아마 읽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참 한국 사회 아직 멀었구나 생각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포털 사이트에 마련된 리뷰 게시판에는 진작부터 남녀 간 의견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개봉일이 확정되지도 않았을 무렵부터 별점은 바닥을 쳤다. 특히 반페미니즘 성향이 짙은 남성들은 작품 자체는 물론 출연 배우까지도 헐뜯었다. 원작 소설이 2016년 출간 이후 100만부 이상 판매되며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부상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속 한 장면

동명 소설은 출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논란의 중심이었다. 최근 배우 서지혜가 이 책을 인증하자 “페미코인 탄다”는 사이버 불링 수준의 비판이 쏟아졌다. 여기에 배우 김옥빈은 “자유롭게 읽을 자유. 누가 검열하는가”라는 댓글을 남겼다. 비난은 그에게 이어졌다. 한국에서 유독 백래시가 심각했다. 특히 여성 연예인들이 주요 타깃이었다. 이 책을 인증했던 가수 아이린이 그랬고, 이 영화의 주연 배우인 정유미가 그랬다. 이 책을 읽었다는 남성 연예인도 있었지만 비난은 상대적으로 적았다.

최 평론가는 “이 작품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작품을 읽은 셀럽들에 대한 공격”이라며 “읽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테러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책을 여성만 읽었겠나, 남성도 읽었지만 공격을 거의 안한다”며 “남성은 아군이고 여성은 적이니까”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영화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조남주 작가의 책 ‘82년생 김지영’을 원작으로 한다. 1982년 태어나 현재를 살아가는 김지영의 이야기를 그렸다. 소설 속 주인공 김지영은 34살 전업주부다. 작가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 사회 여성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고용시장의 불평등을 겪었고 독박 육아를 감당했다. 이 책은 출간 후 누적 판매 100만부를 돌파하며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일상적인 차별에 노출돼 있는 여성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얻으며 대한민국 페미니즘 열풍을 불러일으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젠더 감수성에 커다란 변곡점이 됐던 지난 2년 동안 이 책은 꾸준히 성장했고 이제는 시대정신이 선택한 이정표로 자리잡았다.

최 평론가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은 출산과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이라며 “김지영은 다시 복귀를 하고 싶어한다. 육아 때문에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 같은 상실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이상한 증상을 보인다. 다른 사람한테 빙의가 돼버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어봤느냐’는 질문에 “정신건강 때문에 안 봤다”며 “그걸 보게 되면 이 세상 남자들이 전부 다 한심해 보인다. 모두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안 봤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영화를 보면서 ‘별거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도 (영화를 보고 나서는) ‘저런 상황에서도 여성은 위화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이 감수성이라는 것은 계속 끊임없이 개발해나가야 되는데 ‘82년생은 뜨신 밥 먹고 (살아왔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흔히 ‘여자들이 팔자 좋은 소리한다’고 하는데 ‘참 감수성 없는 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 상징적인 한 장면이 있다. 김지영을 보고 남성들이 ‘이야, 팔자 좋다. 나도 일 안 하고 저렇게 애나 보고 커피나 마셨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한다”며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공기,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감수성이 아직은 굉장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면 울컥한다”라며 “특히 여성은 많이 울컥할 것이고, 남성은 반성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