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시리아 철수에 4곳의 美 주적들만 웃는다

입력 2019-10-15 17:1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결정에 미국의 주요 적으로 간주되는 국가 및 세력 4곳이 역설적으로 수혜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이 세계 경찰 역할을 포기하면서 중동에서 발을 빼자 그 공백을 차지하려는 러시아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악수(惡手)가 중동에서 적들의 입지를 넓혀주는 효과만 낳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4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시리아 철수로 득을 보는 미국의 가장 큰 적 4곳’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러시아와 이란, 시리아의 비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 이슬람국가(IS)가 트럼프 대통령의 철수 결정에 따라 새로운 기회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시리아 내전·IS 격퇴전에서 미국과 손을 잡고 함께 싸운 유럽과 쿠르드족 등 동맹 세력들은 이번 결정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이 자진해서 시리아 내부 영향력을 포기하면서 해당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 폭은 한층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은 반군 진영을 지원하는 미국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졌다. 시리아 내전 내내 아사드 독재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러시아는 지난 주말 시리아 반군이 점거하고 있는 지역에 자국 공군기를 보내 그곳에 위치한 병원들을 반복적으로 폭격했다. 아사드 정권과의 유대관계를 다지면서 미국이 빠진 시리아 지역을 제입맛대로 재편성하려는 의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중동 지역 핵심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10여년만에 전격 방문해 왕실 지도부를 만났다. 전통의 우방인 이란 외에 사우디아라비아와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다져 미국이 빠진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대를 이은 독재 정치로 미국의 비난을 받아온 아사드 정권의 입장에서도 미군의 철수와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는 정권의 기반을 공고히 다질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동맹이었던 쿠르드족과 내전 내내 적대했던 아사드 정권이 터키의 침공에 맞서 손을 잡는 이례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쿠르드족 관계자에 따르면 러시아는 양측이 손을 잡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시리아 내부 세력 구도가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트위터를 통해 “쿠르드족을 누가 보호하든 상관없다. 러시아든, 중국이든, 심지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든 괜찮다”며 “나는 그들이 잘 해내길 바란다. 우리는 (시리아에서) 7000마일이나 떨어져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미국과 더 가깝고 우리의 일부인 남쪽 국경을 지키는 데 더 집중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일이 아니라며 불개입 의사를 재차 천명한 것이다.

WP는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소속 파트홀라 네자드의 말을 인용해 아사드 정권의 또다른 후원자이자 미국의 적국인 이란 역시 미군 철수로 이득을 챙길 것이라고 전했다. 네자드는 “이란은 위기의 쿠르드족에 접근해 자신들만이 믿을 수 있는 파트너임을 어필하며 쿠르드족에 대한 개입을 확대할 것”이라며 “이는 이란이 반대하는 쿠르드족 세력화를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요동치는 정세 속에 쿠르드족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는 IS도 미군 철수의 수혜자로 손꼽힌다. 시리아 북부 수용소에서 IS잔당 785명이 무더기로 탈출하는 등 IS 부활 우려까지 나온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쿠르드족이 미국의 개입을 유도하기 위해 IS 조직원 일부를 석방하고 있을지 모른다”며 근거없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