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56)를 전날부터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비록 공소시효가 완성됐더라도 전국민의 공분의 대상이 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끝까지 수사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경찰의 책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15일 브리핑을 열고 “이씨의 범죄 혐의를 규명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가장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이자 전국민의 공분의 대상이 된 사건”이라며 “법조계 인사 등 외부자문위원의 자문을 받아 최근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이씨가 저지른 모든 범죄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번 피의자로 입건이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수사본부는 “피의자의 모든 범죄 사실과 그 수사 과정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점들에 대해 한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8차 사건과 관련해 당사자인 윤모(52)씨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고 호소하며 재심청구를 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윤씨의 재심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이날 15일 경기남부경찰청을 방문해 당시의 공판기록과 조사기록 등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경찰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수사기록 사본에 대한 등사 요청이라든지 이런 부분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정보공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씨는 그동안 경찰의 대면조사 과정에서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강간·강간미수 등의 범죄를 자백했다.
수사본부는 이 가운데 이씨의 DNA가 검출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3, 4, 5, 7, 9차 사건만 우선적으로 강간살인 혐의를 적용해 입건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추가로 이씨의 DNA가 나오거나 당시 자료 등을 토대로 한 수사에서 혐의가 입증된다고 판단되는 사건이 있으면 그때 추가 입건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브리핑에서 경찰은 이씨가 저지른 나머지 4건의 살인사건도 공개했다.
경찰은 “이씨가 이들 사건을 자백할 때에도 형사와 프로파일러들에게 장소적인, 지역의 지리에 대해서 그림을 그려가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1987년 12월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과 1989년 7월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1991년 1월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 1991년 3월 청주 주부 살인사건 등이다.
특히 초등학생 실종사건은 1989년 7월 18일 화성군 태안읍에 살던 김모(당시 9세)양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된 사건이다. 같은 해 12월 김양이 실종 당시 입고 나갔던 치마와 책가방만 화성군 태안읍 병점5리에서 발견됐다.
이곳은 9차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지점이다.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은 1987년 12월 24일 여고생이 어머니와 다투고 외출한 뒤 실종됐다가 열흘가량 뒤인 1988년 1월 4일 수원에서 속옷으로 재갈이 물리고 손이 결박된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은 1991년 1월 27일 청주시 복대동 택지조성 공사장 콘크리트관 속에서 방적 공장 직원 박모(당시 17세)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지름 1m 콘크리트관 속에서 발견된 박양은 속옷으로 입이 틀어막히고 양손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목 졸려 숨져 있었다.
포크레인 기사로 일했던 이씨는 당시 화성과 청주 공사 현장을 오가며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 주부 살인사건은 1991년 3월 7일 청주시 남주동 김모(당시 27)씨의 집에서 김씨가 양손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린 채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이다.
경찰은 앞으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비롯한 이씨가 자백한 살인사건의 증거물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분석과 과거 수사자료 등을 토대로 이씨의 혐의를 밝힌다는 방침이다.
이씨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충북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