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진범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치른 윤모씨가 체포 당시 기억을 털어놨다. 밥을 먹던 도중 형사들이 찾아왔고,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끌려갔다고 그는 회상했다.
윤씨는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1988년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밥을 먹고 있는데 경찰이 양산동 산속 (누군가의) 별장으로 끌고 가서 한마디 한 게 기억난다”며 “‘니가 8차 범인이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 경찰서로 갔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는 ‘아니다’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다”며 “거짓말탐지기를 실시한 사람이 ‘안 맞는다. 데려가 조사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당시 수사 기록에는 윤씨가 체포 5시간 만에 범행을 자백했다고 적혀있다. 윤씨의 체모가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게 진범 확정의 근거였다. 윤씨는 “그 기록은 틀리다”며 반박했다. 그는 “형사가 달라길래 체모를 6차례 뽑아줬다”며 “그걸 가져다가 현장에 뿌린 뒤 내 체모가 나왔다고(했다는) 이야기도 하더라”고 했다.
윤씨는 앞서 언론을 통해 경찰의 가혹 행위로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억울함을 토로해왔다. 그는 이날도 “(경찰이) 3일 정도 잠을 안 재우고 쪼그려뛰기를 시켰다”며 “미치지 않는 이상 사람이 견딜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쪼그려뛰기를 하다가 안 되니까 앉았다 일어났다를 시키더라”며 “그걸 못하니 누군가 나를 발로 걷어찼는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가슴하고 엉덩이 쪽을 많이 맞았다. 아직도 비가 올 때 쑤시고 멍 자국이 가끔 난다”며 후유증을 토로했다.
윤씨는 당시 조사 과정 느꼈던 참담함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한 형사가 ‘너 하나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는 얘기를 했다”며 “음모 털을 준 적 있는데 현장에 나왔다더라. 그래서 ‘그게 왜 거기 있냐’고 물으니 (형사가) 대답을 안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리고 나서 몇 대 맞고 나니까 정신이 멍하고 내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더라”며 “그렇게 밤을 꼬박 새웠는데 새벽이 되니 내가 자백했다며 기자들이 몰려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재판 과정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윤씨는 “국선 변호인 얼굴 한번 못 봤다”며 “구형받고 1심 법정에서야 그 변호사 얼굴을 살짝 봤다. 그냥 나 혼자 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 형편이 어려워 배움이 짧아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민선 변호인을 고용하라는데,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우리 친척들도 그만한 돈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범행을 자백한 이춘재(56)의 등장을 떠올렸다. 사건 유력 용의자로 특정됐던 이춘재는 14일 피의자로 정식 입건됐다. 윤씨는 “착잡했다”는 한마디로 순간 심정을 정리했다. 이어 “2010년에 교도소에서 나와 교화위원 집에 3년 정도 있다가 직장을 얻어 8년째 다니고 있다”며 “지금 꿈이 있다면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찾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당당하게 나가고 싶다”며 앞으로 진행할 재심을 앞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