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악조건 극복은 여성인력 활용에 달려있다” 세계여성이사협회 창립 3주년 국제 포럼 개최

입력 2019-10-15 10:00
세계여성이사협회(WCDKorea·회장 이복실)는 창립 3주년을 맞아 ‘여성의 경영참여 확대: 기업의 도전과 과제’를 주제로 15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제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여성임원확대를 위한 기업의 도전 사례들을 살펴보고, 향후 과제들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7월 발표된 여성가족부 자료에 의하면 2018년 매출 500대 기업 기준으로 전체 임원 1만 4460명 중 여성임원은 518명으로 전체의 3.6%에 불과하다.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걸맞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 문화 형성을 위해 여성 인재 발굴 및 육성이 기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으나 한국기업들은 여전히 혁신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60개국을 조사한 결과 국가 사회적으로 여성인력에 대해 개방적이고 공정한 문화를 형성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장려할수록 국가의 경제적 성공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해 한국을 방문해 “노동시장의 성차별을 해소하면 한국의 GDP가 10%는 증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세계여성이사협회 이복실 회장은 “한국 사회가 처한 저출산 고령화, 장기 디플레이션 가능성 등 경제적 악조건들을 극복은 여성인력의 적극적 활용에 달려있다”며 “현 정부에서도 여성장관 30%,공공기관 여성임원 의무화,3년 내 여성 고위공무원 10% 달성 등 다양한 촉진책을 펴고 있는데 기업들도 이 같은 시대흐름을 잘 읽고 여성 인재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최근 연구결과를 언급하며 “여성 고위직이 많을수록 기업의 실적이 더 좋고 여성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성공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캐나다 호주 등 선진국은 물론 후진적인 가부장제 문화가 온존하고 있는 일본, 인도조차도 여성활약추진법, 여성할당제 등을 통해 여성인력들을 활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기업들에서 여성인재 활용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저조한 상태”라며 “최고경영자들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여성 인재 발탁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 문화 형성의 중심에 서야만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의 경영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 만아니라 최고 경영자의 의지, 일과 가정의 양립등 사회 제도적 변화 등 3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며 “여성의 경영참여확대를 위해 선도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향후 추진과제를 모색하고자 이번 포럼을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에서는 일본의 여성 30% 클럽을 이끌고 있는 시세이도 그룹의 마사히코 우오타니 회장이 시세이도의 혁신에 관하여 기조강연을 했다. 마사히코 우오타니 회장은 코카콜라 사장과 회장을 거쳐 2014년부터 시세이도 회장으로 취임, 4차 산업 혁명에 발맞춰 시세이도를 이끌고 있다. 그가 취임한 후 4년간 판매는 9%, 영업이익은 41% 증가했으며 시세이도 그룹 내 여성이사 및 감사(female board director and auditors)는 45%, 글로벌 여성간부(female global leaders)는 38%에 이르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마사히코 우오타니 회장은 “기업문화의 다양성 확보와 우수한 인재 활용을 위한 핵심과제는 여성인재의 발굴과 등용”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 등 정부 관계자와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김교태 삼정 KPMG 대표,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 김광일 MBK 파트너스 대표, 존 리 메리츠 자산운용대표 등 재계 주요 인사 및 기업의 여성임원, 법조계, 언론계, 학계 여성 리더 등 170여명이 참석했다.

패널토의는 채경옥 삼일회계법인 전문위원(전 한국여기자협회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롯데쇼핑 강희태 대표, 맥킨지 한국사무소 강혜진 파트너, 신진영 기업지배구조원 원장, 박정림 KB 증권 대표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롯데쇼핑 강희태 대표는 “롯데그룹의 경우 신동빈 회장의 경영철학과 혁신 추진 의지에 따라 그룹 차원에서 여성인재 발굴과 여성임원 확대를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4년 롯데그룹의 신입사원 중 여성은 5% 수준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42% 에 달하고 있고 2005년 그룹의 간부사원 중 여성 간부사원은 1% 수준이었으나 2019년 현재 14%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강 대표는 “여성들이 경력단절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어주는 회사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특히 여성임원 확대는 최고경영진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남성 CEO들의 인식 전환 없이는 달성되기 힘들다. 롯데처럼 회장이나 CEO가 강력한 실천의지를 보여야 기업 문화가 비로소 바뀌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맥킨지 한국사무소 강혜진 파트너는 “기업 내 여성인력활용 증가는 글로벌 GDP상의 상당한 규모의 성장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 규모는 최대 잠재력을 발휘했을 때는 28조 달러, 역내 최고 수준 달성 시에는 12조 달러에 달한다”고 말했다. 강 파트너는 “특히 현재 고위 리더 10명 중 1명만이 여성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약 45%의 남성은 여성들의 리더십 역할 참여가 적정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면서 “기업 내에서 여성 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CEO가 강력한 이니셔티브를 쥐고 비즈니스 목표설정, 모니터링, 책임소재 명확화, 채용과 승진에서의 공정성 확보 및 적극적 지원체계, 업무 장소 및 시간의 유연성 증대, 여성 재교육 기회 마련 등 시스템 변화 및 제도적 지원을 통해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금융계 최초의 증권사 대표가 된 박정림 KB증권 사장은 “한국기업에는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 뿐만 아니라 핵심 포지션이나 주요 업무는 여성에게 맡기지 않는 유리벽 같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 적지 않다”면서도 “여성 스스로 그런 유리천장과 유리벽을 뚫고 전진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얼마나 전개했는지 역시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박 사장은 이어 “4차 산업에 따른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및 주 52시간제 도입 등으로 여성들에게 이전에 없던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고 금융기관들 역시 여성 임원 육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면서 “과거 남성들 위주의 관계중심, 근면성 중심 기업문화 대신 업무중심, 성과중심 기업 문화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업무 시간 중에 얼마나 집중하느냐, 성과를 누가 얼마나 냈느냐 등 실질적인 결과가 더 중요해지고 있고 특히 젊은 세대들은 워라밸 추구경향이 강하다”면서 “ 여성들이 보다 공정하게 일하고 승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그 성과를 기업실적에 연결시키려는 CEO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신진영 원장은 “여성이사들이 이사회에 많이 포진해 있을수록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 수준이 높고 주주관리보호 수준이 높거나 성평등 수준이 높은 선진국일수록 이 같은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면서 “정부 및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기업에서 여성이사의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이슈화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신 원장은 “2019년 현재 OECD가 4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49%의 국가에서 이사회의 성별구성을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30개국에서는 여성이사 할당제나 자발적인 목표를 설정해 여성이사 비율을 확대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경우 83.5%의 이사회가 남성으로만 구성돼 있어 다양성, 공정성 면에서 현저히 뒤처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지배구조원이 2014년~2018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79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것에 따르면 전체 여성 이사 수는 2014년 84명에서 128명으로 소폭 증가했으나 대부분 사외이사 31명에서 51명으로 20명 증가한 것에 힘입은 것으로 사내이사수는 2014년 64명에서 2018년 77명으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2018년 현재 남성 사외이사 수는 1862년, 남성 사내이사 수는 2424명에 달하는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신 원장은 “기업의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내에서부터 성별 다양성을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적어도 한명 이상의 독립적 여성 사외이사를 보유하도록 정책적 방안을 마련하거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처럼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경우 이사회내 특정 성(性)이 3분의 1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제도적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여성이사협회는 ‘기업 이사회 여성 이사 확대 및 육성’을 목표로 창립된 비영리 글로벌 회원 단체로, 한국 지부는 지난 2016년 9월 전 세계 74번째 지부로 창립되었다. 현재 국내 주요 기업의 여성 등기 이사 및 사외이사 7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