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미가입 압하지야, 北노동자 외화벌이에 악용… 배후엔 러시아” WP

입력 2019-10-14 15:42
북한 노동자들이 지난 9월 12일 압하지야 수도 수후미에 있는 건설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미국 워싱턴포스트(WP) 웹사이트 캡처

흑해 인근의 자치공화국 압하지야가 유엔(UN)의 대북 제재를 피해 북한 노동자들이 외화벌이를 하는 곳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13일 보도했다. 압하지야가 유엔 가입되지 못한 자치공화국이라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러시아 서남부 흑해 연안지역에 있는 압하지야는 국제법상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영토의 일부인 자치공화국이다. 조지아가 소련에서 독립할 당시 압하지야도 조지아로부터 독립하려 했지만 친러시아 성향이라는 점 때문에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후 2008년 러시아 침공 당시 조지아 중앙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면서 일방적으로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압하지야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압하지야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는 국가는 시리아, 베네수엘라 등 소수 친(親)러시아 국가뿐이다. UN 등 어떤 국제기구에서도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 점이 유엔의 대북 제재를 지킬 의무도 없다는 논리로 악용되고 있다.

타밀라 메르츠콜라바 압하지야 상공회의소장은 지난해 초청을 받고 북한 평양에 방문했을 때 북한 정부 관계자들이 노동자 해외 파견을 제의했다고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이에 따라 북한 노동자 400여명이 압하지야로 파견돼 아파트나 철로 건설 등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은 압하지야의 북한 노동자가 매년 북한에 5억 달러 이상을 송금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북한 노동자의 압하지야 외화벌이는 러시아의 지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러시아가 사실상 자국의 통제 하에 있는 압하지야를 활용해 북한의 신뢰를 얻을 뿐만 아니라, 북한 노동자 본국으로 송환토록 한 유엔 대북 제재를 피해 북한 노동자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엔은 북한의 핵실험이 잇따르자 2017년 자금줄을 옥죄기 위해 해외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을 올해 말까지 귀국시키도록 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러시아에 근무하던 북한 노동자는 한때 약 4만명에 달했지만 현재 1만명 수준으로 감소했고 오는 12월22일까지 남은 이들을 본국에 송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북한 노동자들을 돌려보내는 대신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압하지야를 안전하게 근무할 장소로 제공하는 곳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북한 노동자를 압하지야에 숨겨 북한 정권의 호의를 얻길 희망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알렉스 멜리키시빌리 IHS마킷 수석연구원은 “러시아 정부가 북한과 압하지야 간 경제적 유대 관계를 증진시키려는 것은 당연하다”며 “한 나라(북한)는 ‘불량국가’이고 다른 한 나라(압하지야)는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혹에 러시아는 압하지야의 북한 노동자는 압하지야가 대처할 문제라고 답했다고 WP는 전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