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슬픔, 남성은 분노…KAIST, 영화 속 캐릭터 편향성 정량분석 성공

입력 2019-10-14 12:24
영화 속 캐릭터 편향성을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의 다이어그램. KAIST 제공

영화 속 캐릭터를 묘사할 때 성별의 편향성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문화기술대학원 이병주 교수 연구팀이 상업영화에서 남성·여성 성별 간 캐릭터 묘사의 편향성을 정량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고 14일 밝혔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미국의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이 고안한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를 통해 여성 캐릭터의 성별 묘사 편향성을 평가한다.

벡델 테스트는 균형적 성별 묘사를 위한 최소한의 요소가 영화에 반영됐지 판단하는 지표지만, 여성 캐릭터의 대사만으로 판별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시각적인 묘사를 고려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영화 속 편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성별별 단어. KAIST 제공

연구팀은 영화의 시간·시각적 특성을 반영한 성별 묘사 편향성을 측정하기 위해 영화의 프레임(화면의 정지화면 단위)별 이미지를 분석하는 최신 분석기술을 사용했다.

24프레임인 영화를 3프레임으로 다운 샘플링을 실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얼굴 감지 기술(Face API)을 접목해 영화 캐릭터의 젠더·감정·나이·크기·위치 등을 확인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편향성을 측정할 수 있는 8가지의 새로운 지표를 고안했다.

8가지 지표는 ‘감정적 다양성(Emotional Diversity)’ ‘공간적 역동성(Spatial Staticity)’ ‘공간적 점유도(Spatial Occupancy)’ ‘시간적 점유도(Temporal Occupancy)’ ‘평균 연령(Mean Age)’ ‘지적 이미지(Intellectual Image)’ ‘외양 강조도(Emphasis on Appearance)’ ‘주변 물체의 빈도와 종류(Type and Frequency of Surrounding Objects)’ 등이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팀이 2017~2018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와 국내 영화 40편을 분석한 결과 각 영화들은 대부분 여성을 편향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감정적 다양성’ 지표에 따르면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에 비해 더 획일화된 감정표현을 보였다. 특히 여성 캐릭터는 슬픔·공포·놀람 등의 수동적인 감정을 더 표현하는 반면 남성 캐릭터는 분노나 싫음 등 능동적인 감정을 더 표현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변 물체의 빈도와 종류’ 지표의 경우 여성 캐릭터가 자동차와 함께 나오는 비율은 남성 캐릭터 대비 55.7%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구와 함께 나오는 비율은 123.9%를 보였다.

장지윤·이상윤 석사과정이 주도한 이번 연구 결과는 소셜 컴퓨팅 분야 최고 권위 학회인 ‘컴퓨터 기반 협업 및 소셜 컴퓨팅 학회(CSCW)’ 11월11일 자로 발표될 예정이다.

이병주 교수는 “영화라는 매체는 대중들의 잠재의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영화 내 묘사가 관객들의 생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보다 활발하게 진행돼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더욱 신중하게 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이병주 교수. KAIST 제공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