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성역할에 편향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여성 캐릭터는 슬픔, 공포, 놀람 등의 수동적인 감정을 더 표현했지만, 남성 캐릭터는 분노, 싫음 같은 능동적인 감정을 더 표현했다. 또 여성 캐릭터는 가구 옆에, 남성 캐릭터는 자동차 옆에 있었다.
14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이병주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컴퓨터 비전 기술을 통해 상업 영화에서 성별 간 캐릭터 묘사 편향성을 정량적으로 분석한 결과, 여성 캐릭터가 획일화된 감정을 표현하고 특정 사물과 자주 출연하는 등 성역할에 편향된 모습을 보였다.
연구팀은 2017~2018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 40편을 분석했다. 영화 대부분이 여성을 편향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8개 지표를 통해 정량적으로 밝혀냈다.
감정적 다양성 지표에 따르면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에 비해 더 획일화된 감정표현을 보였다. 특히 슬픔, 공포, 놀람 등의 수동적인 감정을 더 표현했다. 하지만 남성 캐릭터는 분노, 싫음 등의 능동적인 감정을 더 표현했다.
주변 물체의 빈도와 종류 지표에 따르면 여성 캐릭터가 자동차와 함께 나오는 비율은 남성 캐릭터 대비 55.7%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구와 함께 나오는 비율은 123.9%를 보였다. 바깥보다 안에서 더 많은 생활을 하는 인물로 그려졌다는 의미다.
여성 캐릭터의 시간적 점유도는 남성 캐릭터 대비 56% 정도로 낮았다. 평균 연령은 79.1% 정도로 어리게 나왔다. 이 두 지표는 한국 영화에서 유독 두드러졌다.
일반적으로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성별 묘사 편향성은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를 통해 평가하는데, 연구팀은 정확한 분석을 위해 시간적·시각적 특성을 반영한 성별 묘사 편향성을 측정하기 위해 이미지 분석 시스템을 도입했다.
*벡델 테스트란, 균형적인 성별 묘사를 위한 최소한의 요소가 영화에 반영돼 있는지를 판단하는 지표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두 명 이상 등장하고, 그 여성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여성 캐릭터들의 대화 주제가 남성 캐릭터와 관련이 없어야 한다. 다만 여성 캐릭터의 대사만으로 판별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묘사를 고려할 수 없으며 여성 캐릭터 혼자 극을 이끄는 영화들에 적용하기 어렵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남성 캐릭터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를 알 수 없다. 테스트에 통과하거나 하지 못하는 이분법 결론을 내놔 성별 묘사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충분히 대변하기 힘들고 평가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한다는 오류도 있다.
연구팀은 오류를 줄이고 효과적 분석을 위해 초당 24프레임 영화를 3프레임으로 다운 샘플링한 뒤 마이크로소프트의 얼굴 감지 기술(Face API)로 영화 캐릭터의 젠더, 감정, 나이, 크기, 위치 등을 확인했다. 이후 사물 감지 기술(YOLO 9000)로 영화 캐릭터와 함께 등장한 사물의 종류와 위치를 확인했다.
연구팀이 사용한 8개 새로운 지표는 ▲감정적 다양성(Emotional Diversity) ▲공간적 역동성(Spatial Staticity) ▲공간적 점유도(Spatial Occupancy) ▲시간적 점유도(Temporal Occupancy) ▲평균 연령(Mean Age) ▲지적 이미지(Intellectual Image) ▲외양 강조도(Emphasis on Appearance) ▲주변 물체의 빈도와 종류(Type and Frequency of Surrounding Objects) 등이다.
이병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1인당 연간 평균 영화관람 횟수가 4.25회에 이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영화를 즐겨본다. 영화라는 매체는 대중 잠재의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영화 내 묘사가 관객 생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는 더욱 신중하게 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소셜 컴퓨팅 분야 최고 권위 학회인 ‘컴퓨터 기반 협업 및 소셜 컴퓨팅 학회(CSCW)’에 다음달 11일 발표된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