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묻지마 속도전’ 배경…조국 ‘명예 퇴진’ 인가

입력 2019-10-14 00:31 수정 2019-10-14 01:40
<2019년10월13일 김지훈기자 dak@kmib.co.kr> 조국 법무부 장관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검찰개혁 고위 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안 통과에 총력을 다해 검찰개혁의 ‘마침표’를 찍겠다. 이달 말부터 두 가지 개혁 법안은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3일 검찰개혁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한 말이다. ‘개혁의 상징’인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 지 1달이 조금 넘었는데 마침표를 찍자고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여권의 법안 처리 ‘속도전’을 ‘조국 출구전략’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법안 처리 후 일정 성과를 냈다는 점을 자평한 뒤 조 장관을 ‘명예 퇴진’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조 장관을 사퇴시키지 않으면 내년 총선을 치르기 힘들다는 우려와도 무관치 않다.

최근 청와대 정무라인은 각계 원로들을 접촉해 조 장관 국면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낙연 국무총리와 민주당 지도부로부터 조 장관의 거취와 관련한 의견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은 여권이 현 상황을 심각하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국론 분열은 없다” “조국 사퇴는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속내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조국 법무부 장관(가운데)이 13일 오후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검찰개혁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9.10.13 kjhpress@yna.co.kr/2019-10-13 15:39:24/

우선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도,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세로 나타난 점은 분명한 상황이다. 한국갤럽은 11일 발표한 대통령 직무수행 여론조사에서 긍정 평가는 43%, 부정은 51%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정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 37%, 자유한국당 27%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율은 직전 조사 대비 그대로였지만 한국당은 3%포인트 올랐다. 그만큼 무당층이 3%포인트 줄었다. 무당층이 한국당으로 옮겨간 것이다. 한국당 지지율은 새누리당 시절이던 201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민주당 호감도는 지난해 8월 57%,11월 54%였지만 올해 3월 조사부터 40%대로 감소했고 이번 조사에서 44%까지 하락했다. 같은 기간 비호감도(‘호감 가지 않는다’ 응답 비율)는 34%에서 47%로 늘어났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대로는 총선을 치르기 힘들다는 지역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10월 8일·10일 조사, 전국 성인 1002명, 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 응답률 17%,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여권 입장에서는 조 장관을 이대로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 장관은 여권 지지층을 중심으로 확고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내 사람’을 최대한 상처 주지 않고 사퇴시키는 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도 감안해야 한다. 여권 안팎에서 사퇴 주장이 나왔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도 각각 명분 있는 퇴진을 했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조 장관은 이후에도 역할이 있을 수 있다”며 “사퇴시키더라도 ‘기스’가 덜 가야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핵심은 명분이다. 민주당은 공수처 등 핵심 개혁 법안 처리를 그 명분으로 들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개혁’을 이뤄냈으니 조 장관은 임무를 완수했다는 시나리오다. 법무부가 특수부 축소 등 개혁 방안을 쏟아내고 15일 국무회의에서 확정하는 등 이달 안으로 일정 성과를 내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시각이 많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오른쪽 두번째)가 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언론장악저지 및 KBS수신료 분리징수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9.10.13 kjhpress@yna.co.kr/2019-10-13 15:23:17/

다만 야당의 반발이 변수다. 애초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검찰개혁안보다 정치개혁안을 먼저 처리하기로 합의했었다. 이인영 원내대표의 말대로 이달 말 공수처 법안 등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려면 이 합의를 깨야한다.

바른미래당 등의 반발이 예상되자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다른 당과 충분히 협의가 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정치개혁안보다 사법개혁안을 먼저 처리하겠다는 의도라기보다 검찰개혁 여론이 높기 때문에 국회가 빨리 할 것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한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 속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며 “검찰개혁 법안을 먼저 통과시키려면 확실한 약속이 필요할 것이다. 원내대표 간 협의를 통해 향후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은 민주당 움직임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공수처 법안 처리 시점에 대해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당 모두 이달 말 운운하는데 이제는 불법 상정마저 강행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체계·자구 심사 기간을 보장하지 않고 그대로 상정하겠다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의 파괴”라며 “여야 원내대표들과 수사권 조정을 논의할 의원들이 참여하는 ‘2+2+2’ 논의 기구를 다음 주부터 가동하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검찰개혁 논의를 위한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통해 특별수사부 축소와 명칭 변경을 위한 규정을 오는 15일 국무회의에서 개정해 확정하기로 한 13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태극기와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2019.10.13 yatoya@yna.co.kr/2019-10-13 15:44:57/

논의 기구가 가동된다고 하더라도 여야가 검찰개혁 법안에 합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당은 개혁안 핵심인 공수처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속도전’에 나선 민주당으로서는 논의 기구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조국 살리기’에 갈 길이 바쁜 민주당이 이달 말 공수처 도입·수사권 조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며 “야당과 검찰 측의 충분한 의견수렴과 논의 없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기존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국민의 사법비용이 증가할 수 있고 경찰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어려워진다며 우려를 표해왔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조 장관 사태에 대한 출구전략을 생각할 때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근거로 조 장관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장관 용퇴를 요구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