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명의 홍콩 시위대가 지난 12일(현지시간) 어김없이 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시위대 행진은 충돌 없이 진행됐지만 지하철역 안에서 화염병을 던지거나 상점을 파손하는 과격한 데모대도 있었다. 홍콩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불법 행위를 멈추라고 수차례 경고했다.
가톨릭 홍콩교구장인 존 통 혼 추기경은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찰이 법을 준수해야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회복할 수 있다”며 평화를 호소했다. 시위대를 향해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실망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증오는 폭력만 키울 뿐이며 이는 문제를 더 큰 상처로 만든다”고 말했다.
추기경 발언 뒤 시위대는 이날 프린스 애드워드역과 완차이지구 쪽에 모여 경찰의 야만성을 규탄했다. 프린스 애드워드역 근처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며 도로를 통제하기도 했다. 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홍콩 해방” “시대 혁명” “마스크 착용은 범죄가 아니다” 등 구호를 외쳤다.
이날 행진은 경찰 허가 없이 이뤄졌음에도 경찰과의 큰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과격한 데모대는 주변 상점과 은행을 부쉈다. 인도를 벗어나 도로 위를 걸으며 차량 흐름을 방해하거나 도로 교차로에 바리케이드를 세우기도 했다. 오후 3시쯤에는 카우룽 퉁 지하철역 안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역사 시설이 훼손됐다. 다른 지하철 역사 입구에도 화염병으로 불이 붙은 모습이 포착됐다.
경찰은 오후 5시쯤 공식 SNS에 화염병 투척 사진과 함께 시위대를 향한 경고 글을 올렸다. 경찰은 “시위대가 오후 3시쯤 카우룽 퉁 지하철역 안에 화염병을 던져 시민들의 안전을 해쳤다”며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역에 있는 시설은 심각하게 손상됐다. 경찰은 역 출구를 일시 폐쇄했다”고 적었다.
경찰이 공개한 사진에는 깨진 유리병이 흩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기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개찰구 일부가 화염에 그을려 검게 변하기도 했다. 한 시민이 SNS에 불이 붙은 당시 사진을 올렸는데, 개찰구 근처 바닥에서 작은 불씨가 번진 모습이 담겼다.
경찰은 이어 “폭도들에게 불법 행위를 즉시 멈추라고 경고하겠다. 우리는 모든 폭력 행위를 향한 비난을 표하며 사건을 엄중히 조사할 것”이라며 “시민들은 위험한 현장에서 즉시 벗어나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불법 행위를 멈추라” “시위자들은 허가되지 않은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폭도들에게 모든 불법행위를 멈추고 즉시 떠나라고 경고한다”며 저녁 무렵부터 3차례에 걸쳐 SNS에 경고 글을 게재했다.
한편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의지는 굳건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12살 여아는 SCMP에 “복면금지법을 시행했지만 우리에게 복면을 착용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정부에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25살의 또 다른 시위자는 “홍콩 시위가 누그러졌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미국의 지도자가 홍콩의 진짜 상황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는 뉴스를 통제하는 중국인들과 대화했을 것”이라며 “그들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을 거다”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미중 무역협상 임시 휴전 합의 후 “홍콩 시위가 많이 누그러졌다. 자연스레 해결될 것 같다. 미중 합의는 홍콩에 매우 긍정적인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발언했다.
한 17세 학생은 “최근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줄었다”면서도 “학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럼에도 열정적인 친구들이 있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여전히 시위에 나온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 9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는 4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5가지를 모두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