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잡고싶었다”지만 억울한 피해자도 많은 ‘화성사건’…8차 사건도?

입력 2019-10-13 15:30 수정 2019-10-13 15:43
1987년 1월 5차 사건 현장인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진범으로 검거돼 20년간 수형생활을 한 윤모(검거 당시 22)씨가 결백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수사 당시 억울한 누명을 썼던 사람들의 사연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 경찰의 강압수사와 폭행·가혹행위 등으로 허위 자백을 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후유증에 시달리다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 경찰은 범인을 빠른 시일 내에 검거해야한다는 목표로 의심이 가는 용의자에게는 폭행과 가혹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경찰이 미리 설계한대로 자백을 받아냄으로써 범인을 특정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특히 화성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다뤄진 9차 사건의 수사 과정을 보면 주먹구구식 수사의 전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찰은 1990년 12월 17일 화성 9차 사건의 피해자 김모(13)양을 살해한 용의자로 윤모(19)군을 검거해 자백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당시 윤군은 “순간적인 성적 충동을 해소하기 위해 김양을 추행하려 했으나 우발적으로 살해에 이르렀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그는 현장검증에서 “모든 자백은 경찰이 시켜서 했다”며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나섰다.

아울러 그의 직장동료도 사건 발생 당시 윤군이 통근버스를 타고 퇴근하고 있었다고 증언하면서 윤군의 결백에 힘을 보탰다. 또 2차례나 이뤄진 정밀감식에서 검출되지 않았던 점퍼에서 갑자기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됐다는 검찰의 발표가 이어지자 증거 조작 가능성이 제기됐다.

화성 9차 사건 용의자로 특정된 윤모군이 현장검증을 하던 모습.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윤군에게 자백을 받아낸 경찰관들이 이에 앞서 사건 현장 부근에 사는 김모(19)군을 강제로 연행해 자신들이 만든 조서를 보여주며 손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하고 폭행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경찰이 애꿎은 10대를 범인으로 몰았다’는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검찰로 송치된 윤군은 일본에서 진행된 유전자 감정 결과 범인이 아니라는 회신을 받아 최종적으로 혐의를 벗게 됐다.

하지만 화성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면서 억울한 상황을 겪은 사람은 윤군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당시는 과학수사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라 사건 현장 보존 등 초동조처가 부족했고, 지문이나 혈흔 등 증거물 수집이 제대로 안 될 때도 많았다. 이런 배경 탓에 폭행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가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인한 혐의로 검거돼 옷을 뒤집어쓴 채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경찰의 강요로 아무런 죄 없이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1990년 12월 18일 화성 9차 사건의 용의자로 조사를 받았던 차모(당시 38)씨는 화성 병점역 부근 열차 건널목에서 기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 조사를 받기 20여일 전 용의자로 지목된 후 경찰 조사를 받고 무혐의로 풀려난 그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1991년 4월 17일에는 화성 10차 사건과 관련한 수사 대상자였던 장모(당시 33)씨가 오산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그는 투신 직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장씨는 추행 혐의로 입건된 전력이 있었고, 환각제를 상습 복용해왔다는 이유로 용의선상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근거가 전혀 없는 황당한 제보 때문에 경찰에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1987년 1월 화성 5차 사건 발생 이후부터 경찰 감시를 받아오다 1993년 5월 한 재미교포의 제보로 본격적인 조사를 받았던 김모(당시 45)씨는 1997년 2월 10일 수원의 자택에서 숨진 채 아내에게 발견됐다.

당시 경찰에 입수된 제보는 “꿈속에서 화성 사건의 범인으로 김씨라는 이름을 봤고, 이것은 분명 신의 계시”라는 황당무계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 내용을 근거로 세 달에 걸쳐 수사를 진행했다.

김씨는 무혐의로 풀려난 뒤 같은 해 8월 결백을 주장하며 자살을 기도했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거의 매일을 술에 의지해 살아가다 건강이 악화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8차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돼 20년 수감생활 후 출소한 윤씨가 무죄를 주장하고, 이춘재(56)도 8차 사건의 범인이 본인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윤씨도 경찰 강압수사에 의한 무고한 피해자로 드러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