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도 돕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쿠르드족을 겨냥한 터키의 군사작전을 용인했다는 비판을 여야 가리지 않고 받자 지난 9일(현지시간) 갑작스럽게 쏟아낸 발언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틀렸다는 역사학계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CNN 등 미 언론은 ‘팩트 체크’를 통해 쿠르드족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일원으로 싸웠다는 내용을 전했다.
‘시리아의 쿠르드족: 역사, 정치, 사회(Syria’s Kurds: History, Politics and Society)’를 저술한 조르디 테젤 프랑스 뇌샤텔대학 사학과 교수는 1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쿠르드족 전투원들이 영국군이나 소련 붉은 군대에 합류해 (나치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고 밝혔다.
테젤 교수는 일부 쿠르드족은 나치 독일군을 ‘영·불 식민지주의에 맞서는 대안 세력’으로 인식해 동조하기도 했지만 또다른 쿠르드족은 나치가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이라크 내 친나치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정권을 세웠는데, 이후 쿠르드족이 이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다른 쿠르드족 역사 전문가인 제네 리스 바자란 미국 미주리대 중동 역사학부 교수는 “(쿠르드족처럼) 민족국가가 없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더라도 물자를 제공하거나 노동을 하는 방식으로 전쟁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역사를 보면 2003년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쟁 당시 쿠르드족은 북부전선을 책임진 대부분의 병력을 차지했다”고 덧붙였다.
바자란 교수는 또 70년 넘게 흐른 2차대전 당시의 상황을 들어 쿠르드족의 뒤통수를 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적이었던 독일이나 일본은 현재 미국의 동맹”이라면서 “2차대전 때 어느 편에 섰느냐에 따라 반드시 오늘날 미국의 동맹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으로 불리는 쿠르드족은 주로 시리아 북동부, 이라크 북부, 이란 북서부, 터키 남동부, 아르메니아 남서부 등 5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전체 수는 3000만~4000만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수도 다마스쿠스 방어를 위해 시리아 정부가 북동부를 비우자 이 지역을 차지한 뒤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를 앞세워 사실상 자치를 누려왔다.
2014년 IS가 발호하자 YPG는 자치 지역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항전했고, IS와의 싸움에서 신뢰할 만한 파트너를 찾던 미국은 본격적으로 쿠르드족을 지원해 YPG는 IS 격퇴 지상전의 선봉에 섰다. 지난 3월 IS 최후의 저항 거점 바구즈 함락의 주역도 YPG가 주축을 이룬 시리아 민주군(SDF)이었다. 쿠르드족은 5년간 이어진 대(對) IS 전투에서 1만1000여명의 목숨을 잃었다.
SDF의 키노 가브리엘 대변인은 지난 7일 아랍권 매체 알하다스 TV를 통해 “미국은 절대 이 지역(시리아 북동부)에서 터키의 군사행동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확언했었다”며 “등에 칼을 꽂은 것”이라고 비난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