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주윤발은 ‘따거’, 성룡은 ‘배신자’로 불리는 이유

입력 2019-10-11 10:59
오른쪽에 주윤발(저우룬파) 왼쪽에 성룡(청룽). 자카르타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홍콩 출신으로 중화권을 대표하는 대배우 주윤발(저우룬파)과 성룡(청룽)이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와 관련해 상반되는 행보를 걷고 있다. 친홍콩 주윤발이 소신 행보로 시민들의 ‘따거’(형)로 불리는 데 반해 친중국 성룡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한 살 차이인 두 사람은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라 1980~90년대 홍콩 영화의 중흥기를 이끈 스타라는 공통점이 있다. 주윤발은 ‘영웅본색’ 등에 출연해 누아르 영화의 상징으로, 성룡은 ‘취권’ ‘용형호제’ 등에 등장해 액션 영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아시아를 벗어나 할리우드에도 진출해 주목받기도 했다.

거리 시위에 참석했다고 추측되는 주윤발의 모습. 중국 언론은 주윤발의 참석이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10일 홍콩 현지 매체에 따르면 주윤발은 지난 4일 검은색 모자와 복장,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 시위에 참석했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고 사진을 함께 찍자는 팬의 요청에 거리낌 없이 응해줬다고 한다. 이 소식에 SNS에선 “역시 주윤발은 다르다” “그는 누구보다 홍콩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스타다” 등 찬사가 전해졌다.

주윤발이 포착된 건 캐리 람 홍콩 행정정관이 계엄령에 준하는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를 발동해 복면금지법을 시행한다고 발표한 날이다.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신상이 노출되지 않도록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이런 조치에 오히려 홍콩 시민들은 얼굴을 꽁꽁 싸매고 거리로 뛰쳐 나와 더 큰 항의 집회를 벌였다. 주윤발 역시 이같은 시민들의 행동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주윤발은 평소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거리낌 없이 정치적 발언을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4년 중국의 내정간섭에 저항한 홍콩 ‘우산혁명’ 당시 그는 “홍콩 학생들의 용기에 감동했다” “평화시위에 무력진압은 불필요하다”는 등의 입장을 밝혔다. 이후 중국 정부는 주윤발의 중국 본토 연예계 활동을 금지했지만 주윤발은 “괜찮다. 돈을 좀 덜 벌면 된다”면서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합뉴스

반면 성룡은 홍콩 시위가 시작된 직후인 지난 6월 “홍콩 시위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또 시위대가 오성홍기를 바다에 던지는 등 사태가 격화된 8월에 “나는 오성홍기의 수호자다” “홍콩은 내 고향이고 중국은 내 국가다. 홍콩이 빨리 안녕을 되찾기를 바란다” 등 발언을 하며 시위대와 거리 두는 모습을 보였다.

우산혁명 당시엔 “강성대국 없이 번영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시위로 인해 홍콩의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2009년 “자유를 갖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런다면 혼란스러운 대만이나 홍콩처럼 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원래 성룡은 1989년 천안문 시위를 지지하는 콘서트를 열기도 했을 정도로 진보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부터는 공산당을 적극 지지하는 대표적인 친중인사로 여겨진다. 2005년 중국 본토에서 사업을 시작하며 공산당과 가까워진 그는 이후 인민해방군과 문화대혁명을 찬양하는 공연을 만드는 등 공산당 홍보에 열을 쏟았다. 그는 현재 중국 국정 자문기관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진출 당시 일본인이라는 오해를 받자 “나는 홍콩인”이라고 당당하게 응답했던 과거와 상반된 그의 언행은 홍콩 시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긴 듯하다. SNS에선 ‘안위를 위해 공산당 앞잡이가 된 성룡이 부끄럽다’는 반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는 2012년 중화권 네티즌들로부터 ‘10대 인간 망종’에 꼽히기도 했다.

박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