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일본 지역을 강타한 태풍 ‘제비’와 비슷한 세력을 가진 것으로 관측되는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에 접근하면서 열도가 초긴장 상태에 놓였다. 내일쯤 일본 수도인 도쿄를 강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벌써부터 주요 항공로와 철도 노선이 마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1일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하기비스는 이날 오전 6시25분 니시노시마(西之島) 서쪽 380㎞ 해상에서 북북서쪽 일본 열도를 향해 시속 25㎞ 속도로 이동 중이다. 중심 기압 925㍱, 중심 부근 풍속 초속 50m, 최대 순간풍속 초속 75m의 세력을 갖춰 기상청은 태풍 분류 중 2번째로 강도가 높은 ‘상당히 강한’ 태풍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태풍의 강도를 ‘강한’(최대풍속 초속 33~44m), ‘상당히 강한’(최대풍속 초속 44~54m), ‘맹렬한’(최대풍속 초속 54m 이상)으로 구분한다. 하기비스는 이 중 ‘상당히 강한’ 태풍에 속한다.
기상청은 하기비스가 ‘상당히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12~13일 동일본 지역에 접근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일부 지역에는 강풍이 강해지고 있는데 이날 저녁에는 바람의 세기가 더 강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기상청은 12일 아침부터 24시간 동안 도카이(東海) 지방 600~800㎜, 간토(關東) 인근 지방 400~600㎜, 호쿠리쿠(北陸) 지방 300~500㎜의 폭우를 예보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태풍이 ‘상당히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상륙한 것은 관련 통계가 있는 1991년 이후 3번뿐이다. 하기비스가 4번째 태풍이 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이전 3번의 사례 모두 대규모의 인명·재산 피해를 낳은 전력이 있어 일본 열도는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
이에 수도권에서 발착(發着)하는 항공기들은 이미 무더기 결항이 결정됐다. NHK에 따르면 전날 항공사 전일본공수(ANA)는 12일 도쿄 하네다(羽田)공항과 나리타(成田)공항을 발착하는 국내선 항공편 406편 모두에 대해, 일본항공(JAL)은 대부분인 350편에 대해 결항을 결정했다. 오사카(大阪)나 주부(中部)공항 역시 대부분의 발착편에 대해 결항이 결정됐다. 항공기의 대규모 결항 사태는 13일 이후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해상보안청은 이날 오후 7시부터 하네다공항 주변 해역의 선박 정박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태풍 제비의 영향으로 간사이(關西)공항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파손돼 관광객이 고립되는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다.
수도권의 JR철도 역시 피해 발생 전 미리 운행을 중단하는 ‘계획 운행휴지’가 12~13일 실시될 전망이다.
아울러 일본 해상자위대는 태풍의 세력을 살펴본 뒤 14일 수도권 가나가와(神奈川)현 사가미(相模)만 해상에서 개최할 예정인 관함식을 취소하거나 축소 개최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로 했다. 12∼13일 열 계획이던 함정의 일반 공개 행사는 이미 취소됐다.
태풍은 일본 정부가 열기 고조에 공을 들이고 있는 럭비 월드컵에도 영향을 미쳤다. 럭비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태풍의 영향을 고려해 12일 예정됐던 3경기 중 2경기에 대해 연기를 결정했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태풍이) 위험지역 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태풍의 경로에 따라 바다에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