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인권침해 여전…강제 야자·복장·두발부터 졸업 금반지 강요

입력 2019-10-10 15:05 수정 2019-10-10 17:47

#장면 1.
‘응급구조학과 3학년은 자격증 취득을 위한 야간자율학습(야자)에 반드시 참여합니다. 만일 학과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졸업 대신 자퇴를 각오해야 됩니다’
저녁식사 시간을 한참 넘긴 지난달 중순 밤 10시쯤 전남 순천 모 대학교.
소위 ‘야자’를 마친 대학생들이 책과 노트 등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대학생들이 2010년대 이후 고등학생들도 강제로 하지 않는 ‘야자’를 하는 진풍경이다.
다리미로 어깨와 바지의 각을 살린 제복 차림의 이들은 두발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유난히 짧았다.

#장면 2.
‘졸업반지 값을 못 내겠다면 전체 학생들 앞에서 그 이유를 밝혀야 합니다. 반지값 안 내신 분들 때문에 모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달 전남 목포 모 대학 간호학과 학생회는 단체문자를 발송했다. 졸업예정자를 제외하고 1인당 3만5000원씩 ‘졸업반지’ 대금을 납부하라는 내용과 응하지 않을 경우 600여명의 전체 학우 앞에서 ‘공개 청문회’를 각오하라는 엄포가 담겨 있었다.
이 대학에서는 졸업예정자에게 금반지를 선물하는 전통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금 시세가 급등한 이후 재학생 부담이 커지자 수년전부터 현금을 모아 대신 전달하고 있다.

‘강제 야자부터 금반지 선물까지...’
광주·전남 대학가에서 대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학사·학과 운영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획일화를 전제로 한 복장·두발 규정과 수업시간 휴대전화 수거는 애교에 가깝다.
10일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에 따르면 순천 모 대학 야간자율학습 강요에 대한 제보를 접수해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시민모임은 진정서에서 “지난해 광주 모 대학 임상병리과 등에서 강제 야자와 군기문화, 졸업반지 선물을 적발해 인권위 권고를 통해 중단되도록 했으나 전문대학, 예체능계 대학 등에서 여전한 악습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모임은 강제 야자의 경우 형법 제324조에 규정된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는 행위’, 헌법 제10조가 보장한 인격권을 침해하는 사례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각 대학 교육현장에서 반드시 추방해야할 인권침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가인권위는 2017년 중·고교의 휴대전화 일괄 수거가 논란이 되자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관련 학칙의 개정을 각 학교에 권고했다. 대부분 고교는 이후 휴대전화를 학생들로부터 걷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 대학에서 면학분위기 조성을 명분으로 수업시간 휴대전화 수거가 암묵적으로 이뤄져 인권위 권고를 오히려 묵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민모임은 각 대학 현황에 대한 전국적 점검을 요청하는 내용의 민원을 교육부에 별도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이 단체는 선후배 사이의 부당한 위계 문화와 돈을 모아 졸업생에게 금반지를 선물하는 등의 비뚤어진 관행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모임은 ‘억지춘향’식으로 졸업반지 비용을 재학생들에게 걷는 악습은 2~3년전까지 서울대 간호학과, 기악과 등 각 대학에서 문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군기문화도 여전한 논란거리다. 시민모임은 “모 대학 1학년 강의실에 선배가 후배들을 모아놓고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설을 했다”는 제보 학생의 녹음 파일을 공개하기도 했다.
앞서 전남대와 조선대 간호학과 등에서는 2016~2017년 사이에 ‘졸업반지’ 관행을 자율적으로 폐지한 바 있다.
시민모임 관계자는 “대학생들이 일제강점기, 군부독재 시절의 불합리한 질서를 학교에서 배우는 현실을 교육부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대학 측이 각 학과의 효율적 운영과 학생 간 형평성을 명분으로 잘못된 대학 문화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