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직장인 A씨는 5년간 중소기업을 다니며 매일 같이 야근과 주말 특근, 상사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허리디스크까지 앓게 된 A씨는 “지금 당장 쉬어야 한다”는 의사 소견에 따라 산재를 신청하고 3개월 무급휴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현장 책임자는 일방적으로 휴직 기간을 2개월로 줄였다. 그러면서 “그렇게 쉴 거면 사업해라. 복귀해도 너 반길 사람 없으니 무조건 다른 팀으로 가라”고 말했다.
자괴감을 느낀 A씨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최근엔 자해를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정신과를 찾았다. A씨는 “회사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하다”며 “허리 아픈 것도 속상한데 휴직 기간 마음 편히 쉬지도 못했다.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우울증과 공황장애, 자살 충동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지난 7월16일부터 9월30일까지 들어온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제보 712건 중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례가 98건으로 13.8%를 차지했다고 9일 밝혔다.
이 단체가 공개한 제보에 따르면 과도한 업무량과 상사의 폭언, 동료들의 따돌림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는 직장인이 많다. 유치원 교사로 일한다는 B씨는 “원장의 갑질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신경과를 다녔다. 매일 약으로 버티며 살아간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두근거리고 출근할 생각에 두렵다”고 토로했다. 다른 직장인들도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폭언을 하는 상사가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상사가 나오는 꿈을 꾼 뒤 구토를 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라거나 “공황장애가 점점 심해져 앞으로 회사를 못 다닐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신질환 관련 업무상 재해 인정은 2014년 33.3%, 2015년 30.7%, 2016년 41.4%, 2017년 55.9%, 2018년 73.5%로 증가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이 비율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개정된 근로기준법에는 업무상 질병에 ‘직장 내 괴롭힘,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발생한 질병’이 추가됐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직장 갑질로 인한 정신적 괴로움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 받으려면 피해 사실을 주치의에게 구체적으로 알리고,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적극적으로 수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