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사는 중국 본토인들 ‘공포’…시위대 표적될까 중국말 조심

입력 2019-10-08 15:05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상화를 밟고 있는 홍콩 시위대.scmp캡처

홍콩 시위대가 중국계 은행과 친중국 성향의 상점들을 공격하는 등 격한 반중국 성향을 드러내면서 홍콩에 사는 중국 본토 출신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8일 보도했다. .

2009년 중국 광둥성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메리(35) 씨는 최근 친구와 중국 표준어인 푸퉁화(普通話·만다린)로 얘기하다 봉변을 당했다. 지나가던 젊은 남자가 욕설을 하면서 “중국 본토로 돌아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는 “그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았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울었다”며 “10년간 홍콩에 살면서 만다린을 쓴다고 해서 타깃이 되고 협박을 받는 일은 처음 겪는다”고 말했다 .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1997년 이후 2017년까지 150만 명의 중국 본토인이 홍콩으로 이주했다. 본토인들이 늘어나면서 홍콩 집값이 치솟고 일자리 경쟁도 치열해지자 중국 본토 출신에 대한 홍콩인들의 감정이 악화됐고, 최근 송환법 반대 시위를 거치면서 증오로 바뀌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시위대가 중국은행, 중국건설은행 등 중국계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집중 공격해 홍콩 시내 전체 3300여 개 ATM 중 10%가 파손됐다. 시위대는 중국인 소유의 식당과 제과점, 약국 등도 공격했고, 몽콕 지역의 중국 휴대전화 샤오미 매장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대학 연구조교인 장모씨는 지난 7월 교내에서 대학 총장을 비판하는 포스터를 떼냈다가 학생들로부터 “본토의 개”라는 욕설을 들었다. 이후 그의 휴대전화에도 욕설이 담긴 메시지가 들어왔다. 지난달 공개 포럼에서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을 두둔했던 한 여성은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 고용주 등 신상이 털려 페이스북에 공개되는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최근 시위에서 한 중국인은 일장기를 들고 있는 시위대를 보고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홍콩 점령을 거론하며 비판하다 심하게 구타당하기도 했다.


중국 허베이성 출신의 캐럴 씨는 “영국에서 살다 아이가 중국적인 환경을 원해 2016년 홍콩으로 이주했다”며 “하지만 요즘 아이에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오직 영어로만 얘기하라고 주의를 준다”고 말했다.
지난 5일 거리행진을 하는 홍콩 시위대.AP연합뉴스

지난 4일 밤에는 시위대 20여 명이 홍콩 판링 역에 정차한 중국 본토행 열차의 유리창과 역내 폐쇄회로(CC)TV 등을 망치와 쇠막대기로 때려 부수는 바람에 열차 안에 있던 승객들은 소리를 지르고 어린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홍콩지하철공사(MTR)는 전날부터 고속열차를 제외하고 홍콩과 중국 광저우, 베이징, 상하이 등 본토를 잇는 열차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다.

안후이성 출신으로 2009년 홍콩 영주권을 받은 겅모씨는 “홍콩은 100년이상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식민통치기간 영국인처럼 행동할 수도록 더 존경을 받았다”며 “홍콩인들이 본토 출신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기지 않는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홍콩 중문대학의 여론조사 결과 40% 이상의 홍콩인은 자신들이 중국인이라는 인식이 낮았다.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연합뉴스

한편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날 “상황 악화 시 모든 옵션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중국 인민해방군이나 중국 중앙정부의 홍콩 사태 개입 가능성을 열어뒀다.

람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나는 우리가 사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중앙정부도 이러한 입장”이라며 “하지만 상황이 매우 악화할 경우 어떠한 옵션도 배제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위대는 상점들을 파괴하고 교통수단을 마비시키고 있으며, 그 폭력은 도를 넘었고 법을 어기고 있다”며 “정부는 이러한 폭력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최대한의 결의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람 장관은 “긴급법이 다시 발동되기 전에 정부가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매우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며 추가적인 긴급법 발동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