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8일 “남조선 집권자가 비굴한 추태를 부렸다”며 대남 비난에 나섰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향후 3년간 미국 무기 구매 계획을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이 중단되자 약한 고리인 한국 흔들기에 돌입했단 분석이다.
대남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북남(남북)합의에 대한 용납 못할 배신행위’란 제목의 글을 통해 “얼마 전 미국을 행각한(방문한) 남조선 집권자가 미국산 무기 구매를 강박하는 상전의 요구를 받아 무는 비굴한 추태를 부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의 친미굴종 행위에 경악을 금하지 않을수 없다.미국산 무기 구입 책동으로 초래될 것은 북남관계의 파탄과 조선반도(한반도) 정세 악화이며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파멸뿐”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우리민족끼리는 또 ‘언행이 다르면 배척을 받기 마련’이란 제목의 글에서도 문 대통령을 비난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 당국이 국제무대에서 그 무슨 ‘비무장지대의 국제평화지대’를 운운해나선 것은 미국과의 북침 전쟁연습과 침략무기 구입 책동으로 조선반도(한반도)평화를 유린해온 저들의 범죄적 정체를 가리우고 민족분렬의 비극적 산물인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를 국제화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했다. 지난달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를 통해 밝힌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화’ 구상을 비난함으로써 비난의 대상이 문 대통령이란 사실을 분명히 한 셈이다.
북한이 ‘남조선 집권자’란 표현까지 사용하며 대남 비난에 나선 이유는 추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단 포석으로 읽힌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은 결렬됐지만 양측이 후속 협상 여지를 남긴 만큼 노골적인 ‘한국 때리기’를 통해 협상 지렛대를 높여 놓겠단 의도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인 한국을 흔들어왔다. 지난 7월부터 지난달까지 외무성·조국평화통일위원회 관계자와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공식매체를 통해 약 50차례에 걸쳐 한국을 비난했다.
아울러 스텔스 전투기 F-35A 등 우리 군의 첨단무기 도입과 한·미 군사훈련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향후 협상에서 주요 의제로 다루겠단 의도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비핵화에 따른 상응조치 중 하나로 체제안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수치스러운 외세추종 정책의 산물’이란 제목의 정세론 해설에서 “방위비분담금의 증액은 곧 전쟁 비용의 증액으로써 상전과 함께 우리와 군사적으로 대결하려는 위험한 기도”라며 “남조선 당국은 수치스러운 친미굴종정책, 어리석고 무분별한 군사적 대결 야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