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뇌사자로부터 간을 기증받아 새 삶을 살던 60대가 이번엔 자신이 뇌사에 빠지자 다른 이를 위해 그 간을 다시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늘 기증자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왔고 자신 역시 그런 상황이 오면 장기를 아낌없이 내 놓겠다는 일념으로 6년을 버텨왔던 고인과 가족의 보은(報恩)의 생명나눔이 모두를 숙연케 하고 있다.
2013년 이후 자신이 받은 뇌사자의 장기를 그대로 재기증한 사례가 지금까지 6건 있었다. 장기 기증받은 사람이 다른 장기를 기증한 사례도 10건이 있다.
받은 장기 재기증의 경우 이식 수술이 조금 어렵긴 하지만 의학기술의 발달로 장기 기능이나 수혜자의 건강 유지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8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에 사는 고(故) 이건창(62)씨는 지난달 24일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곧바로 119를 통해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만 뇌사상태가 됐다. 고인은 결국 지난 1일 자신이 이식받았던 장기(간)를 재기증함으로써 받은 은혜를 사회에 되돌려줬다.
고인은 40대부터 간염으로 고생하다 2012년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던 2013년 9월, 기적처럼 뇌사자로부터 간을 이식받아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다음해 수술받은 병원에서 장기 기증 관련 심포지엄에 수혜자로 참석해 아내와 함께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다.
그는 “지금 내가 살아있는 이유도 누군가 나에게 기증을 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생명나눔에 동참하고 싶다”고 당시 심정을 자식들에게 얘기하곤 했다고 한다.
아내는 “6년 전에 이식받지 못하면 죽는다는 말에 간절히 기도하던 순간을 겪어보았기에 누군가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 받은 장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는 것이기에, 남편에게 기증해 주신 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받으실 분은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병원에 왔을 때 의식이 없어서 말 한마디도 못하고 간 것이 미안하고 안타깝다. 밥 한 끼라도 따뜻하게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못해 준 것이 마음이 걸리고 좋은 일 하고 갔으니 하늘나라에서도 잘 했다고, 행복하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KODA 조원현 원장은 “기증은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주는 것이기에, 나 또한 받을 수도 있는 소중한 나눔이다. 이건창님처럼 기증은 나를 살리기도 하고 남도 살릴 수도 있는 숭고한 나눔”이라며 “기증 문화 확산을 통해 하루에 5.2명씩 이식을 기다리다 돌아가시는 분들이 없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은 서울시립용미리 공원 묘지에 안장됐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