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수감생활을 한 윤모씨가 언론 인터뷰를 극도로 꺼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신상이 많이 알려져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교도관 A씨에게 연락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특정된 이후의 심경을 털어놨다고 한다.
윤씨는 1988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에서 한 가정집에 침입해 B양(13)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이듬해 10월 1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경찰이 고문해 허위자백했다”며 항소했으나 2심과 3심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기징역이 확정된 윤씨는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충북 청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됐다.
윤씨는 가석방된 뒤 일정기간 생활고에 시달리며 국민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는 최근 윤씨를 만났지만, 윤씨가 “인터뷰할 생각이 없다. 당장 돌아가라”며 굳게 입을 닫았다고 7일 보도했다.
윤씨는 이춘재가 유력 용의자로 특정됐다는 경찰 발표가 나온 지난달 19일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A씨는 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윤씨가 ‘형님 뉴스 보셨어요? 이제는 억울함을 풀 수 있겠네요’라고 하더라”며 “이번에는 정말로 무죄를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재판 과정에서, 복역 중에도 줄곧 무죄를 호소했다. 청주교도소에서 윤씨와 10년간 함께 있었다는 A씨는 “윤씨를 아는 수형자와 직원들 사이에서는 ‘무죄인데 억울하게 들어온 애’로 통한다. 그 애는 교도소에 들어왔을 때부터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했다”고 했다.
8차 사건 당시 윤씨가 범인으로 특정된 것은 현장에서 나온 체모와 혈액형, 그의 자백 때문이었다. 정밀감식 결과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고, 체모에는 카드뮴이 다량 함유돼 있었다. 경찰이 B형 남성 450여명의 체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낸 결과, 국과수는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을 통해 윤씨 체모와 현장의 체모가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윤씨 역시 경찰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시인했다.
그러나 윤씨는 당시 자백했던 게 경찰의 강압 수사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A씨는 “윤씨가 고문을 당해서 허위 자백을 한 것”이라며 “잠을 자지 못했고, 엄청나게 맞았다는 식으로 윤씨가 이야기를 했다. 자백을 안 하면 죽을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더라. 지금도 그 애는 자신을 고문한 형사와 기소한 검사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현재 A씨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준비 중이다. A씨는 “법적인 문제는 내가 맡아서 하고 있다”면서 “(윤씨와 함께) 조용히 변호사를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최근에 ‘야 너 19년 6개월 동안 수감됐었으니까 무죄 인정받으면 형사보상금 두둑이 받을 거야’라고 했더니 윤씨가 ‘형님 저는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요. 돈에는 관심 없어요’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