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복면금지법에 왜 이렇게 격렬하게 저항하나

입력 2019-10-08 00:05 수정 2019-10-08 00:05
한 여성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복면을 쓰고 홍콩 시위에 참여했다. 저항을 상징하는 '가이 포크스'가 그려져 있는 가면의 이마에는 붉은색으로 '해방 혹은 죽음'이라고 적혀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 시위대는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후에도 격렬하게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마스크를 쓰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엄포에도 얼굴을 철저히 가린다. 이들이 복면을 벗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홍콩 시위대는 지난 8월 홍콩에 설치된 ‘스마트 가로등’ 1대를 넘어뜨리고 19대를 훼손했다. 시위 중 발생한 사고는 아니었다. 이들은 가로등이 시위 참가자들을 촬영해 사적 정보를 캐내는 데 사용될 것이라 우려했다. 정부에 분노한 시위대는 가로등 전선을 자르고 기둥을 톱으로 넘어뜨리며 항의했다.

스마트 기술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사생활·개인 정보 감시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6월 말 홍콩에 설치된 50개의 스마트 가로등도 마찬가지다. 스마트 가로등엔 카메라와 블루투스 센서가 탑재돼 있다. 이에 가로등이 시민들의 얼굴을 인식하는데 활용될 거란 의혹은 자연스레 제기됐다. 시위에 자주 참석하거나 눈에 띄는 행동을 해 테러리스트로 규정되면 미래에 중국으로 송환돼 법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가로등에 찍힌 사진이 언제 어떻게 사용될지 모른다며 시민들은 분노했다.

홍콩에 도입된 스마트 가로등 모습. 가로등의 잎사귀 부분엔 조명이 달려있고 기둥 중간엔 카메라 2~3대가 담겨있다. 홍콩 정부 공식 사이트 캡처.

홍콩 정부는 스마트 가로등이 교통, 날씨, 공기 질에 대한 정보만 수집하며 사생활 보호를 위해 공공시설 주위만 찍는다고 해명했다. 가로등에 안면인식 기능은 없으며 촬영된 사진이 제3자에게 건네지는 일 또한 없을 것이라며 시위대의 우려를 루머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추가로 350개를 더 설치할 계획을 밝혔다.

정부 해명에도 시민들은 추적을 피하려 복면 착용은 물론이고 임시 휴대폰을 사용하고, 시위 장소 이동 시 1회용 교통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신분증이 담긴 지갑을 알루미늄 포일로 감싸는 경우도 있다.

중국 가로등에 사방으로 달려있는 CCTV. BBC 캡처

중국 구이저우성의 구이양 경찰서에서 CCTV로 촬영된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모습. BBC 캡처

시민들의 우려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이미 중국에서 감시 카메라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돼 있고, 충분히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는 약 2억대의 CCTV가 운영되고 있다. 인구 1000명당 CCTV 설치 대수가 가장 많은 세계 10대 도시 가운데 8곳이 중국 도시다. 중국 당국이 CCTV로 반정부·반체제 인사를 식별해 구금하는데 악용해왔다는 의혹 또한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중국이 한번 CCTV를 설치하면 개인 정보가 낱낱이 정부에 흘러들어간다는 점도 시위대 우려에 불을 붙였다. BBC는 2017년 중국 경찰이 AI CCTV 카메라를 활용해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시민들의 얼굴과 정부가 가진 개인 정보와 일치시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개개인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이 카메라는 시민들이 타고 다니는 차량 번호도 파악하고 있으며 자주 어울리는 지인들과 친척들의 정보도 저장하고 있었다. 일부 카메라는 얼굴을 인식한 뒤 나이를 예측하고 인종, 성별, 키까지 알아냈다.

때문에 스마트 가로등은 홍콩 시위대에겐 공포로 다가왔다. 범죄인 인도법이 잠정 중단되긴 했지만 추후 중국 정부가 홍콩 반중 인사를 중국 본토로 소환할 때 이 카메라가 중국 당국을 도울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그렇게 시위대는 헬멧, 보안경, 수술용 마스크 등을 착용하고 우산을 쓴 채 시위하고 있다. 길거리 중간에 설치된 CCTV 카메라를 우산으로 가리는 참가자들도 쉽게 발견된다. 시민들은 사진 찍히는 것을 꺼리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신분을 가리고 있다.

심지어 홍콩 사람들의 개인 정보가 이미 중국으로 인도되고 있다는 주장까지 활동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활동가 벤터스 라우는 지난 8월 ABC뉴스에 “홍콩 사람들의 개인 정보가 이미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며 “굉장히 우려해야 할 사항이다”고 주장했다.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뒤 지난 6일(현지시간) 홍콩 시내에서 시민들이 가면을 쓰고 시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복면금지법을 향한 저항엔 백색테러에 대한 우려도 한몫한다. 왜 얼굴을 가리냐는 질문에 많은 시위대 참가자들은 백색테러를 언급했다. 백색테러는 극우나 우익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암살·파괴 등을 수단으로 하는 테러다.

한 시위 참가자는 지난 9월 CNN에 “백색테러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위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백색테러의 의미에 대해 묻자 “페이스북에 게시글을 올렸는데 테러리스트로 비난받을 것 같을 때”라고 했다. 손수건으로 코와 입 전체를 가리고 있던 이 여성은 “원치 않는 카메라에 찍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만일 내 사진이 온라인에 게재되거나 중국 정부에 전달되면 내 배경을 캘 거고, 나중에 중국 국경을 넘으려 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내가 시위 참가자로 알려지면 직장에서 잘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위대들은 날이 갈수록 사진에 예민해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시위대 무리에 있던 한 사람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자 중국 스파이가 아니냐며 소동이 벌어지는 일이 있었다. 홍콩 시위대는 지난 8월 현장에서 시위를 벌이다 단상 맨 앞줄에서 사진을 찍는 한 남성을 발견했다. 20명에 달하는 참가자들은 이 남성을 둘러싸 “중국 스파이가 아니냐”고 추궁했고 이 남성은 “나중에 기억하려고 찍는 사진”이라고 답했다. 시위대는 계속 남성을 의심했고 결국 이 남성이 촬영한 사진 중 얼굴을 특정할 수 있는 사진을 모두 지운 뒤에야 남성을 보내줬다.

중국 인민 해방군이 지난 6일 막사 위에서 홍콩 시위 참가자들을 촬영하고 있다. 시위대는 이에 맞서 카메라를 향해 레이저 불빛을 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위는 18주째로 접어들고 있지만 카메라를 향한 저항은 지난 6일(현지시간)까지도 계속됐다. 이날 홍콩 시위대는 이들을 카메라로 찍는 중국 인민 해방군을 향해 레이저 불빛을 쐈다. 카메라에 자신들의 모습이 담기는 것을 방해함과 동시에 사진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자 중국군은 ‘당신은 법을 어기고 있으며 기소될 수 있다’고 적힌 노란 깃발을 들었고, 시위대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홍콩 시위에서 중국군이 경고 메시지를 보낸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이끄는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CNN에 “홍콩 정부가 안면인식 기능을 스마트 가로등에 설치하지 않겠다고 보장할 수 있느냐”고 물으며 “그들은 약속할 수 없다. 중국의 압박 때문에 약속하지도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홍콩이 중국 신장처럼 정부 감시하에 놓이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시위대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시민들의 행동 점수를 매기는 ‘사회적 신용 제도’가 홍콩에 확대 도입될 가능성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이 지난달 9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도착하는 모습. 웡 비서장은 다음 날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시위대)는 유럽연합(EU)이 앞으로 중국과 무역협상을 할 때 중국의 인권 침해를 강조해주길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AP/연합뉴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