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9월 발생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진범으로 붙잡혀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모(당시 22세)씨가 재판 과정에서 고문으로 자백했다며 결백을 주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당초 8차 사건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방한 범죄라며 범인을 체포했다. 그런데 이춘재(56)는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힌 상태다. 이 사건도 이씨가 저지른 범행으로 확정되면, 당시 수사기관의 부실수사 및 강압수사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윤씨에 대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윤씨는 2심 재판부터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경찰 연행 이후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했다”며 “검찰과 법원에서 범인이라고 허위로 진술하도록 강요당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1심 재판부가 신빙성 없는 자백을 기초로 다른 증거도 없이 유죄로 판단했다”고도 했다.
대법원은 하지만 “윤씨가 경찰 수사부터 1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범행을 시인해왔고, 강요에 의해 임의로 자백했다고 의심할 이유가 없다”며 “범행 당시 윤씨가 부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뚜렷한 자료도 없다”고 반박했다. 윤씨가 경찰에 진술한 범행 방법 등이 실제 사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도 고려됐다. 2심과 3심은 모두 윤씨의 항소와 상고를 기각해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윤씨는 복역 중 20년 형으로 감형됐고, 지난 2010년 청주교도소에서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기계 용접공이던 윤씨는 1988년 9월 화성군 태안읍 진안1리에 살던 박모(13)양을 성폭행한 후 살해한 혐의로 1990년 경찰에 붙잡혔다. 이 사건은 앞선 7차례의 연쇄살인과 달리 피해자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옷가지로 매듭을 만들어 손발을 묶는 범인의 ‘시그니처 행동’이 보이지 않아 모방범죄로 분류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나온 체모의 혈액형 등이 윤씨와 일치한다는 이유로 체포해 자백을 받아냈다.
그러나 윤씨는 수감된 이후에도 줄곧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2003년 시사저널과의 옥중 인터뷰에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8차 사건은 내가 한 일이 아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윤씨는 “돈도 없고 ‘빽’도 없어 재판에서 졌다”며 “경찰 수사과정에서 맞았다”고도 했다. 윤씨는 피해자의 오빠를 알고 지냈지만 박양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8차 사건 자백을 포함해 이춘재 진술의 신빙성을 다각도에서 검증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7일 “윤씨 등 당시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화성 사건 진실을 규명한 후 피해자들 회복조치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