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가 프로파일러를 배석한 여러 면담을 통해 모방범죄로 알려진 화성 8차 사건 역시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알려졌던 10건 모두 그의 범행이고, 억울한 누명을 쓴 이가 생겼다는 의미가 된다.
해당 사건 범인으로 검거돼 20년을 복역한 윤모씨가 당시 재판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던 것으로 7일 확인됐다. 화성 8차 사건은 박모(당시 13)양이 살해된 사건이다. 박양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한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용의자 윤씨는 이듬해 7월 검거됐다. 같은 해 10월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항소했지만 2심과 3심에서 기각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감형돼 20년간 옥살이하다 2009년 가석방됐다.
그는 1심 선고 이후 항소하면서 “고문을 당해 허위로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사건 발생 당시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지만 경찰에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허위로 진술했다”며 “검찰과 1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허위진술을 하도록 강요당했지만 1심은 신빙성이 없는 자백을 기초로 다른 증거도 없이 유죄로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상급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자백 신빙성을 의심할만한 부분이 없고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만한 아무런 자료도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3심도 이를 인정했다.
경찰은 이춘재의 자백에 대해 ‘허위 자백’ ‘영웅 심리’ 같은 주장들을 토대로 신빙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춘재의 자백을 아주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할 수 없다”며 “사이코패스의 영웅 심리는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겠다는 의도가 있을 때 주로 나타나지만 이춘재는 (공소시효가 끝나) 수사를 받을 게 아니라는 걸 뻔히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윤씨를 검거했던 형사들은 “이춘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범인은 윤씨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박양 사건은 화성 사건과는 수법 등이 달라 처음부터 별개 사건으로 분류했다고 했다. 피해자가 논이나 야산이 아닌 집에서 살해됐고, 옷가지로 피해자를 결박하지도 않았다는 이유다. 아울러 오염되지 않는 증거물을 통해 범인 특정했다고 강조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