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 한국까지 와 ‘2대1 간이식’ 60대…“새 삶 준 의료진에 감동”

입력 2019-10-07 12:29 수정 2019-10-07 17:15
알베르토씨와 가족들이 서울아산병원 병실에서 간이식팀 의료진들과 퇴원을 축하하고 있다.


“무치시마스 그라시아스!”(정말 감사합니다)

지구 반대편 남미의 칠레에서 한국을 찾아 고난도 간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알베르토(62)씨는 오는 10일 귀국을 앞두고 새 삶을 선사해 준 의료진에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말기 간경화와 진행성 간암이었던 알베르토씨는 자신의 나라와 미국 등에서 치료가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좌절했었다.

7개월 전 마지막 희망을 품고 낯선 한국땅을 밟았을 때만 해도 다시 가족 얼굴을 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던 그는 그러나 서울아산병원에서 두 딸로부터 각각 간 일부를 받는 ‘2대1생체 간이식’에 성공해 다시 웃음을 찾게 됐다.

7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토목 기사인 알베르토씨는 지난해 9월 극심한 피로와 황달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말기 간경화와 간암 판정을 받았다. 혈전(핏덩어리)에 의해 간 입구가 완전히 막혔고 암이 담도까지 침범한 상태였다.
결국 요양병원에서 삶을 정리하도록 안내받았지만 칠레 현지 의사의 추천으로 우여곡절 끝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아산병원에서 2차례 연수 경험이 있던 그 의사는 6000여건 넘는 간이식 수술과 간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97%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는 아산병원 간이식팀에 대한 믿음이 컸다.

현지 의사로부터 다급한 도움 요청 메일을 받은 의료진은 알베르토씨의 상태를 살펴봤다. 하지만 한 명의 살아있는 사람 간 일부를 이식받는 보통의 ‘1대1생체 간이식’으로는 키 182㎝, 몸무게 92㎏의 그에게 줄 수 있는 간의 크기가 너무 작아 수술이 불가능했다.

의료진은 알베르토씨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2명의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각각 간 일부를 제공받아 시행하는 2대1생체 간이식 뿐이라고 판단했다.

전 세계에서 2대1생체 간이식 수술의 95% 이상이 아산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방식은 2000년 3월 이 병원 이승규 석좌교수가 세계 최초로 고안했으며 500례 이상 이식 기록을 갖고 있다.

2대1생체 간이식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은 알베르토씨와 가족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한국행을 결심했고 지난 3월 25일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혈액형이나 조직 적합성이 가장 잘 맞는 사람은 첫째 딸(34)과 막내 딸(23)로 확인됐다. 지난 4월 8일 의료진은 첫째 딸의 왼쪽 간과 막내 딸의 오른쪽 간 일부를 떼내 알베르토씨의 간에 옮겨심는데 성공했다.

건강을 되찾은 알베르토씨는 지난달 10일 퇴원했으며 아산병원이 제공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달간 머물며 회복 과정을 점검해 왔다.

알베르토씨는 “서울아산병원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준 곳이다. 평범한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 준 의료진과 간호사들은 평생 나와 가족에게 감사와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승규 아산병원 석좌교수는 “2대1생체 간이식을 받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가까운 미국을 가지않고 한국을 찾아온 것은 우리나라 장기이식 수준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