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자백, 터무니 없지 않다… 경찰 골탕 먹일 위치 아냐”

입력 2019-10-07 12:22 수정 2019-10-07 12:23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모방 범죄로 밝혀졌던 화성 8차 사건에 대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56)의 자백이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7일 출연해 화성 8차 사건 자백에 대해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겠다는 의도는 아닐 것”이라며 “프로파일러와의 신뢰 관계를 통해 수사에 협조하려는 자발적 태도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춘재는 프로파일러를 배석한 여러 면담을 통해 모방범죄로 알려진 화성 8차 사건 역시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은 범인이 이미 검거돼 형도 마쳤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알려졌던 10건 모두 그의 범행이다.

이춘재의 자백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허위 자백이다’ ‘영웅심리에 자백했을 것이다’ 같은 주장들이 나왔다. 당시 화성 사건 모방 범죄로 결론 내고 윤모씨를 검거했던 형사들은 “이춘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화성 사건과는 수법 등이 달라 처음부터 별개 사건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논이나 야산이 아닌 집에서 살해됐고, 옷가지로 피해자를 결박하지도 않았다는 이유다. 아울러 오염되지 않는 증거물을 통해 범인 특정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춘재의 자백 심리에 대해 “영웅이 되고 싶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한 전문가는 “이춘재가 화성에서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사건들은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본인이 범죄 역사에 새로운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 아닌가 싶다”며 “이춘재 심경 변화의 핵심은 외적인 자극이 아니라 내적인 판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같은 주장들에 대해 “이춘재가 ‘(화성) 8차 사건도 내가 저질렀다’고 하면서부터 수사가 꼬이고 있다”면서도 “아주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특히 사이코패스들은 영웅 심리 때문에 남이 했던 범행도 자신이 했다고 하기도 하는데, 보통 그런 허세는 경찰의 수사에 혼선을 주겠다는 의도가 있을 때 주로 나타난다”며 “하지만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다 끝났다. 이춘재 입장에서 보면 수사를 받을 게 아니라는 걸 뻔히 잘 알고 있다. (이춘재는) 수사선상에 혼선을 준다거나 ‘경찰을 골탕먹이겠다’라는 생각을 가질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웅 취급은 어디서 하나, 언론에서 한다. 이춘재는 무기수이고 현재 자신의 사건에 대해 언론에서 어떤 기사가 나가는지 알지 못한다”라며 “다시는 사회로 돌아오지 못할 사람 입장에서 영웅이 돼 봤자 얻는 게 없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이춘재의 자백을 이끈 프로파일러의 공이 컸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춘재가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유는 프로파일러와의 신뢰 관계”라며 “이춘재는 곧 환갑이다. ‘이제는 털고 가자’(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인생의 말년을 앞에 두고 더 이상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부담을 지기 싫다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서 수사에 협조하려는 자발적 태도를 보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화성 8차 사건 진범으로 지목됐던 윤씨가 주장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 폭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직 모른다”면서도 “해외 연구에 따르면 ‘허위 자백을 해서라도 강압적인 수사 현장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열망을 간절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윤씨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체모 분석기법도 지적했다. 당시 경찰은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서 티타늄 성분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포함됐다고 발표했었다. 윤씨는 당시 근처 농기구 공장에서 일을 했다. 직업 특성상 체모에 티타늄이 많았다. 현장 근처에 남은 족적도 윤씨를 가르켰다고 했다. 무엇보다 결정적 단서는 윤씨의 자백이었다. 이 교수는 “티타늄은 DNA와 같은 과학적인 수사 기법은 아니다”라며 “농기구 업체에서 근무하던 사람은 다 티타늄이 많이 나올 것이다. 어떤 환경에 근무했는지에 대한 일종의 공통분모를 알려주는 것이지, 범인을 특정하는 증거라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