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춘재가 자백한 8차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씨가 꾸준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16년 전 윤씨를 면회한 한 전직 기자는 당시 있었던 뒷이야기를 풀어놨다.
신호철 전 시사인 기자는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담당 경찰과 나눴던 대화부터 윤씨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회상했다.
그는 “화성경찰서에 가서 ‘나머지 사건 범인도 8차 진범일 가능성이 없냐’고 묻자 경찰이 ‘절대 아니다. 며칠 전에도 면회를 갔는데 이상한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며 “그런데 경찰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고 ‘걔 만나지 마라. 걔 이상하다’는 말만 했다”고 주장했다.
신 전 기자는 2003년 5월 윤씨를 만났다. 이미 윤씨가 약 15년의 옥살이를 치른 시점이었다. 신 전 기자는 “자기는 (다른 사건을) 전혀 모를 뿐만 아니라 8차 사건도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며 “그가 너무도 당당하게 이야기를 해 당황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윤씨가) 수사 과정에서 맞아서 자백했다고 했다”며 “구체적으로 물었지만 ‘구구절절 다시 그때 상황을 묘사하기는 싫다’며 자세히 말하지는 않더라”고 전했다. “재판에서 왜 졌냐고 물었더니 ‘돈도 없고 백도 없는 놈이 하소연할 데가 어디 있겠나. 억울하다’고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 전 기자는 윤씨의 첫인상과 말투 등이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선량하고 억울한 피해자의 절박함이 전달되지 않았다”며 “‘저 정말 아니에요’가 아니라 ‘에이~ 나 아니에요’라는 식의 빈정거리듯 툭툭 내뱉는 말투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아마 듣는 사람에게 설득력을 떨어뜨렸을 수 있을 것”이라며 “착한 아들, 평범한 사람이라는 이춘재의 평판과 너무 대비된다. 윤씨는 정반대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신 전 기자와의 면회 후 윤씨는 종종 전화로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신 전 기자는 “반복적으로 대화를 했는데 윤씨가 굉장히 진정성 있게 자기 무죄를 주장했다”며 “신변잡기적인 얘기도 많이 했는데, 굉장히 외로워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외부와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신 전 기자 역시 경찰을 찾아 이런 윤씨의 주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바로 경찰서에 가서 ‘어떻게 된 거냐. 수사해봐야 하지 않냐’고 했다”며 “경찰은 전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걔 정말 이상한 또라이’라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신 전 기자는 “(당시)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아 재심을 해볼 수도 없었다”며 “윤씨는 내게 하소연을 하는데 내가 도울 방법이 하나도 없더라. 만약 이분이 범인이 아니라면 약간 죄책감이 들 것 같다”고 털어놨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