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북정책의 폐해…“北, 실무협상은 거들떠 안 봐”

입력 2019-10-07 09:44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북·미 실무협상의 결렬로 북·미 대화가 시계제로 상황에 빠졌다.

미국 언론들의 전망도 엇갈린다.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는 것은 북한의 고정 레퍼토리라 북·미 협상이 재개될 것이라는 긍정론이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 실무협상 결렬을 이유로 무기실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북측 대표로 나선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지난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됐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는 6일(현지시간)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 결렬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외교술의 위험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거래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북·미 실무협상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밴 잭슨 뉴질랜드 빅토리아 대학 교수는 WP에 “북한의 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 앞에 놓인 매트처럼 (북한에) 계속 당하는 상황에서 북·미 실무협상에서 얻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관료 출신인 잭슨 교수는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또 다른 정상회담을 원하면서 북·미 실무협상을 보이콧할 수도 있다”면서 “북한이 무기실험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이번 실무협상에 나선 것도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했기보다는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실무협상 재개를 약속한 것을 형식적으로라도 지키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만 살필 뿐 실무협상 성과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상황을 오판해 지나친 기대를 갖고 스톡홀름 협상장에 나왔다는 분석도 계속됐다. 채드 오캐럴 코리아리스크그룹 대표는 WP에 “트럼프 대통령이 평탄치 않을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과 핵실험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면 미국의 중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외무성은 스톡홀름 결렬 직후 낸 담화에서 “미국이 저들의 국내정치 일정에 조·미(북·미) 대화를 도용해보려는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려 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최대 관심사는 북한의 다음 행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은 미국의 정책이나 고위 관리들에게 반응할 때 국영 매체를 통해 종종 과장된 주장을 펼친다”면서 “스톡홀름 협상장에서 갑작스럽게 철수한 것이 북한이 오랫동안 외교를 중단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에 2주 이내에 스톡홀름에서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한 것은 득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랜드연구소의 북한 전문가인 수 킴은 WSJ에 “국무부가 (결렬 이후에도) 대화의 문을 열어둔 것을 보면 미국이 합의에 대해 너무 열성적인 것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이 합의를 열망하면 판돈을 올리는 수법을 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북·미 실무협상 결렬로 비핵화 합의 도출은 더 험난해졌다.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는 두 정상간 합의에만 의존해 실무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미 실무협상에서 아무런 진전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하노이의 재판(再版)’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WSJ은 스톡홀름 결렬은 화가 난 북한에게 더 많은 무기 시험을 할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무기 시험이라는 신경전을 펼칠 경우 북·미 대화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