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 빈손으로 왔다” 결렬 선언…트럼프에 공 넘겨

입력 2019-10-06 20:31 수정 2019-10-07 01:1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27일 하노이 중심가 메트로폴 호텔 회담장 입구 국기 게양대 앞에서 악수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은 6일 “미국이 우리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고 우리 인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이번과 같은 역스러운(역겨운) 협상을 할 의욕이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오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결렬로 막을 내린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는 이미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북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천명한 바 있다”고 환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문제해결의 방도를 미국측에 명백히 제시한 것만큼 앞으로 조미(북미) 대화의 운명은 미국의 태도에 달려있으며 그 시한부는 올해말까지”라고 강조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이번 협상에 대해 “미국 측은 이번 협상에서 자기들은 새로운 보따리를 가지고 온 것이 없다는 식으로 저들의 기존 입장을 고집하였다”며 “아무런 타산이나 담보도 없이 연속적이고 집중적인 협상이 필요하다는 막연한 주장만을 되풀이하였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은 이번 협상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으며 저들의 국내정치 일정에 조미 대화를 도용해 보려는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려 하였다”고 비난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양측이 두 주일 후에 만날 의향이라고 사실과 전혀 무근거한 말을 내돌리고 있는데…”라며 ‘2주내 협상 재개’ 가능성도 일축했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은 결렬됐지만 양측이 후속 협상 여지를 남기면서 재개 시점에 관심이 쏠린다. 북·미 정상 모두 정치적 이유로 성과가 절실한 탓에 협상이 완전히 중단되진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비핵화 범위와 이에 대한 상응조치를 두고 양측이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어려워 보인다.

북측 협상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측이 우리와의 협상에 실제적인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판단한 데 따라 협상을 중단하고 연말까지 좀 더 숙고해 볼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도 후속 협상 가능성을 차단한 것은 아니었다.

김 대사는 “실무협상이 실패한 원인을 대담하게 인정하고 수정함으로써 대화 재개의 불씨를 되살리는가 아니면 대화의 문을 영원히 닫아버리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협상 재개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미국은 모든 주제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기 위해 2주 이내에 스톡홀름으로 돌아와 다시 만나자는 스웨덴 주최 쪽의 초청을 수락할 것을 제안했다”며 “미국 대표단은 이 초청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김 대사 성명이 나온 지 3시간여 만에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날 것을 촉구한 셈이다.

북·미 간 대화의 문은 열려 있지만 향후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긴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대북 제재 완화를 원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내년에 재선을 노리는 가운데 ‘탄핵 복병’을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북한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표현을 비꼬듯 ‘대조선(대북) 적대 시 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미국에 요구했다.

관건은 비핵화에 따른 상응조치를 두고 북·미가 어떻게 이견을 좁히느냐다. 그동안 북한은 체제안전 보장과 대북 제재 완화를,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 동결과 영변 핵시설 및 추가적인 핵시설 폐기 등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북·미는 이번 실무협상에서도 비핵화 범위와 이에 대한 상응조치를 두고 첨예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쪽에서 또 다른 계산법을 들고 나온다면 올해 중으로 다른 협상에 나올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에 김 대사는 “하지만 새로운 계산법이 아니라면 그것으로서 조·미 사이의 거래가 막을 내릴 수 있다는 데 대해서 이미 명백히 입장을 표명했다”고 답했다.

또 김 대사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 유지 여부는 미국에 달렸다”고 경고했듯 북한의 도발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미 공군의 첨단 지상감시정찰기 E-8C 조인트 스타즈(J-STARS) 2대가 주일 미군기지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 경고장을 날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손재호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