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이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마지막 브렉시트 협상안을 제출했지만 EU가 거부하면서 우려했던 이달 말 ‘노딜(No Deal·합의 없는) 브렉시트’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달 영 하원이 오는 19일까지 EU와 새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내년 1월 말로 브렉시트를 연기하는 내용의 ‘노딜 방지법’을 통과시키는 등 내부 반발도 거세 존슨 총리가 안팎으로 몰리며 속수무책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5일(현지시간) 미셸 바르니에 유럽연합(EU)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의 말을 인용해 “영국과 EU 사이에서 3년을 넘게 이어온 (브렉시트) 협상이 붕괴 직전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바르니에 대표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일간 르몽드 주최 행사에서 “영국 정부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모든 책임을 홀로 져야 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헀다. 이 발언은 최근 존슨 총리가 제출한 수정 협상안을 EU가 검토한 이후에 나온 것으로 사실상 ‘협상 결렬’을 시사한다.
외신들은 EU 지도자들이 존슨 총리의 제안에 대해 ‘실행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아 노딜 브렉시트 위기감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EU측 브렉시트 협상단과 정치인들이 존슨 총리의 이번 제안 역시 EU 소속 27개국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바르니에 대표는 다만 “영국 정부가 여전히 브렉시트 협상에 진지하다면 이번주 내로 ‘다른 협상안’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고, 이 경우 EU측도 논의를 진행시킬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존슨 총리가 앞서 이번 협상안을 제출하며 “최종 제안”이라고 못을 박은 데다 “EU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 예정 시한인) 10월 31일까지 더는 그들과 협상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정부의 고위 각료들도 존슨 총리의 이번 협상안을 ‘최종안’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렉시트 최대 난제인 아일랜드-영국령 북아일랜드 국경통제에 관한 ‘백스톱’(안전장치) 조항도 여전히 협상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취임 전부터 백스톱 폐기를 주장해온 존슨 총리는 이번 협상안에서 영국이 EU에 예산 분담금을 내기로 한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1년부터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체가 EU의 관세동맹을 떠나되, 북아일랜드는 2025년까지 농식품·상품 분야에서 EU 단일시장에 남겨두자고 제안했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가 다음주 존슨 총리와 회담에서 협상안을 조정하겠다는 입장이나, 사이먼 코베니 아일랜드 부총리가 이미 지난 3일 “이번 (영국측) 제안의 어떤 조항도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아일랜드 현지의 반감이 강하다.
브렉시트를 자신의 정치적 성장을 위한 도구로만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는 존슨 총리는 어떻게든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는 무리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내각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존슨 총리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해임되는 일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왕에게 해임 통보를 받는 경우가 아니면 스스로 물러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브렉시트 강행으로 인한 혼란에 정치적 책임을 지기보다는 계속 밀어붙여 ‘브렉시트 순교자’로 남는 길이 자신의 정치 생명 연장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