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가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시행한 ‘복면금지법’이 시민들을 다시 자극하며 사흘째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대는 곳곳에서 지하철역과 중국계 은행, 친중국 상점들을 파괴했다. 중국인 은행원 직원이 시위대에 폭행당해 중국 대륙까지 들끓고 있다. 홍콩 경찰은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14세 소년까지 폭동 혐의로 기소했다. 홍콩 사태가 통제불능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시민들은 6일 시내 곳곳에서 정부의 복면금지법 시행과 경찰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홍콩섬 동쪽 코즈웨이베이에 모인 시민들은 오후 2시쯤부터 완차이를 거쳐 센트럴까지 행진했다가 다시 정부 기관이 밀집한 애드미럴티로 방향을 틀었다.
시내 중심 도로는 폭우속에 우산을 쓴 시위대 물결로 가득차면서 곳곳의 교통이 마비됐다. 카오룽 반도의 침사추이 지역에서도 시민들이 시위 주제가인 ‘홍콩에 영광을’(Glory to Hong Kong) 노래를 부르고 “경찰을 해체하라. 더 지체할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코즈웨이베이와 침사추이 등 시위대가 지나가는 부근 쇼핑센터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전날 전면 폐쇄됐던 홍콩 지하철은 이날 오후까지 절반 정도 밖에 운행되지 않았다.
홍콩 지하철 당국은 지난 4일 저녁 10시반쯤 “많은 지하철역에서 방화 등 폭력사건이 발생했다”며 안전을 이유로 모든 지하철 운행을 중단시켰다.
광둥성 선전과 인접한 북부 신계 지역의 셩수이에서는 지난 5일 시위대가 중국 이동통신사 차이나모바일과 베스트마트360 등 친중국 상점들을 파괴하고 일부에서는 불까지 질렀다. 중국 은행(Bank of China)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현금지급기(ATM)를 파괴하기도 했다.
또 JP모건에 근무하는 중국인 은행원이 홍콩 시위대에게 폭행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돼 중국 본토의 여론도 들끓고 있다.
JP모건에 근무하는 한 중국인 남성이 지난 4일 은행 본점 건물에 들어서려 하자 시위대가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야유를 보냈다. 그가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라고 말하자 시위대 중 한 명이 갑자기 달려들어 그의 얼굴을 마구 때려 안경까지 날아갔다.
이 동영상이 SNS를 통해 퍼지자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시위대가 아니라 폭도다.” “인민군을 투입해 진압해야 한다” 등의 분노를 표출했다. JP모건측은 “필수 요원이 아닌 직원들은 주말에 처리할 일이 있다면 사무실에 나오지 말고 가급적 집에서 일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홍콩 경찰은 시위 도중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14세 소년을 폭동 혐의로 기소해 시위대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를 이어갔다. 이 소년은 4일 밤 9시쯤 위안랑 지역의 거리에서 경찰이 쏜 총에 왼쪽 허벅지를 맞았다. 이어 툰먼 지역의 병원으로 이송돼 탄환 제거 수술을 받았다.
경찰은 당시 상황에 대해 “경찰관이 땅에 쓰러진 뒤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느껴 한 발을 발사했다”면서 “이후 화염병 2개가 날아들어 경찰관의 몸에 불이 붙기도 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일에도 18세 고등학생이 경찰이 쏜 권총 실탄에 가슴을 맞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학생도 폭동 혐의로 기소됐다.
캐리람 홍콩 행정장관은 시위대의 복면과 마스크 등의 착용 금지한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5일 법 시행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시민들에게 폭도들과 관계를 끊으라고 촉구했다.
람 장관은 5분짜리 동영상에서 극단적인 폭력으로 홍콩의 공공 안전이 위협받았기 때문에 전날 긴급법을 발동해 복면금지법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제 홍콩은 폭도들의 극단 행동 때문에 ‘매우 어두운 밤’을 보냈다”며 “홍콩은 오늘 절반이 마비 상태에 빠졌고, 시민들은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극히 가공할 폭력이 홍콩 전역에서 자행되고 있고, 복면을 쓴 폭도들의 극단적인 행동은 충격적”이라며 “홍콩 정부는 단호히 폭력을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홍콩 시민들에게 “함께 폭력을 규탄하고 폭도들과 관계를 결연히 끊자”고 당부했다.
람 장관은 지난 4일 행정회의를 열어 1967년 이후 52년 만에 긴급법을 발동해 복면 금지법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복면금지법은 공공 집회나 시위 때 마스크, 가면 등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으로,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 미국과 유럽의 15개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