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에서 5일(현지시간) 열렸던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결렬됐다. 북한은 “미국이 빈손으로 나왔다”고 비난했고 미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가져갔다”고 반박했다.
지난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노딜’ 이후 약 7개월 만에 열린 스톡홀름 북·미 대화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말싸움으로 끝이 났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중대 고비를 맞은 것이다.
특히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북한이 이를 행동으로 옮길 경우 북·미 관계가 다시 대결 국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북측 협상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이날 오후 6시30분쯤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북한대사관 앞에서 “협상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협상이 아무런 결과물도 도출되지 못하고 결렬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한 데 있다”며 “미국은 그동안 유연한 접근과 새로운 방법, 창발적인 해결책을 시사하며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하였으나 아무것도 들고나오지 않았으며 우리를 크게 실망시키고 협상의욕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김 대사는 “한 가지 명백한 것은 미국이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 측이 우리와의 협상에 실제적인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판단한 데 따라 협상을 중단하고 연말까지 좀 더 숙고해볼 것으로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사는 특히 ‘핵실험과 ICBM 발사시험 중지를 연말까지 유지할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의 핵시험과 ICBM 시험발사 중지가 계속 유지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되살리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 입장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핵실험과 ICBM 발사시험 재개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그는 “조선반도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우리의 입장은 불변”이라며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화 가능성은 열어놓되, 자신들의 요구는 체제안전 보장과 제재 완화라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실무협상 결렬과 관련해 “미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협상 테이블에) 가져갔으며 북한 측 카운터파트들과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김명길 대사가 “미국이 빈손으로 협상에 나왔다”면서 결렬 책임을 미국 측에 떠넘긴 것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그러나 “한 차례의 만남으로 북·미 간 문제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협상이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대북 협상’이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김 대사가 스톡홀름에서 ‘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미국을 비난한 이후 약 5시간 만에 성명을 내놓았다.
미 국무부는 “북한 대표단이 앞서 발표한 논평은 오늘 8시간 반 동안 이뤄진 논의의 내용이나 정신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대표단의 입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이어 “논의가 이뤄지는 동안 미국 대표단은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있었던 일들에 대해 검토했으며 북·미 양측의 많은 관심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보다 집중적인 관여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그러면서 “미국 대표단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4개 핵심사안 각각에 대한 진전을 위한 많은 새로운 계획을 소개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4개항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국전쟁 당시 전쟁포로와 실종자 유해 송환이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대표로 하는 미국 협상단이 북한에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미 국무부는 북·미 실무협상을 계속하기 위해 스웨덴이 2주 이내에 스톡홀름에서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 대표단은 초청을 수락했으며 (북한에) 초청을 수락할 것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미 국무부는 또 “미국과 북한은 70년 동안 이어진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적대의 유산을 단 한 차례의 토요일 (하루 협상) 과정을 통해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것들은 중대한 현안들이며 북·미 양국의 강력한 의지를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그런 의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승욱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