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가 검찰 개혁과 대학 입시 문제를 넘어 여성 문제로 번지고 있다. 조 장관 발언들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보 진영이 ‘자식 교육과 집안 재정에 무지한 남성 가장’ ‘무기력하고 불안에 떠는 아녀자’ 프레임을 굳건히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여성단체들은 아직까지 이에 대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조 장관은 지난 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자택 압수수색을 하던 검사와 통화한데 대해 “가장으로서, 불안에 떨고 있는 아내의 남편으로서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간 조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 “제 처가 매우 놀라 건강이 너무 염려되는 상태였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연락을 한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그러면서 “제가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한 게 아니라 제 처가 순식간에 바꿔줘서 (검사에게) 부탁을 드린 것”이라고 했다. 조 장관 자신은 집안을 책임지는 ‘남성 가장’으로서 의연하게 대처했으며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압수수색에 너무 놀라 자신에게 의지했다는 것이다. 통화를 하게 된 원인도 정 교수에게 넘겼다. 조 장관은 최성해 동양대 총장과 통화해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있었을 때도 “아내가 바꿔줬다”고 해명했다.
조 장관의 발언은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다. 그는 딸과 아들의 입시 부정 의혹과 사모 펀드 의혹에 대해 “자식 교육과 집안 재정은 제 처가 관리를 해서 저는 잘 모른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대부분 알지 못한다는 취지였다. 조 장관의 발언에 따르면 정 교수는 교수로서의 공적 역할을 하면서도 사적 영역에서의 자녀 교육 및 재정도 책임졌다. 실질적 가장 역할은 정 교수가 해온 것이나 다름없는 셈인데 조 장관은 공식적으로 집안의 가장은 본인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 장관이 재현하는 가장의 모습을 ‘온정적 가부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2일 통화에서 “각종 의혹에 대해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가장으로서 책임은 진다는 태도”라며 “‘무책임한 가부장’보다는 낫지만 2019년에도 그런 모습이 한국 진보 진영이 보여주는 프레임이라면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이런 고정관념의 재생산이 진보 진영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진보는 기존 가치관에 도전하는 것인데 오히려 진보 진영에서 고착된 성역할을 당연시 하고 있다”며 “조 장관 하나를 비판하기 보다는 그런 프레임이 진보 진영 안에서 반복되는 게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 장관은 두둔하면서 부인인 정 교수는 (조 장관으로부터) 떼낸다는 게 여권의 프레임 아니냐”며 “조국은 문제가 없다. 문제는 와이프다. 이런 인식이 저는 오히려 더 문제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또 “조 장관 사태로 공직자 자녀들의 입시를 전수조사하자는 것도 문제”라며 “다들 성인이고 사생활이 있는 독립적 개인인데 부모가 공인이라고 모든 게 까발려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여성단체들은 아직 현 상황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통화에서 “조 장관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슈에 관해 소속 여성단체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했다. 상황이 상당히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까닭에 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린다는 시각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 진영에서 조 장관을 비호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학 연구자는 “진보 진영 전체가 합심해 조 장관을 지켜야 한다고 나선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여성단체들도 고심이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