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을 꿈꾸는 이 남자.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 그렇게 강요받았다. 늘 웃으라며 ‘해피’라는 애칭까지 붙여졌다. 강박은 서서히 그의 뇌를 잠식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통제 불능의 웃음이 그 전조였을까. 미소 속에 차오르는 분노를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2일 개봉한 영화 ‘조커’는 배트맨의 숙적, 희대의 악당 조커의 탄생 기원을 파고든다. DC 코믹스에 기반을 둔 캐릭터이지만, 토드 필립스 감독은 완전히 재창조된 독창적 서사를 구현한다. 허름한 아파트에서 병약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내면의 악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직조해낸다.
1980년대 부자와 빈자로 분열된 도시 고담시가 배경에 놓인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는 아서는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살지만 점차 힘에 부친다.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 조롱이 쌓이고 쌓여 묵직이 가슴을 짓누르던 중, 더는 참을 수 없는 세상의 ‘무례’에 그는 폭발해버린다.
축 늘어졌던 앙상한 몸으로 경쾌하게 춤을 추는 순간, 아서는 완전한 조커로 거듭난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조커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1989)와 ‘코미디의 왕’(1983)을 바탕으로 빚어진 캐릭터인데, 피닉스는 그 뒤틀린 광기를 마치 처음부터 제 것이었던 양 온몸으로 표출해낸다.
극과 극의 인물을 점층적으로 그려가는 피닉스의 표현력은 경탄을 자아낸다. 슈퍼히어로에 맞서는 빌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에 현실성이 부여되는 것도 온전히 그의 연기 덕분이다. 영화는 빈부격차나 복지 등 사회문제를 건드리며 저 스스로도 사실성을 획득해 나가는데, 그로 인해 단순한 장르영화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비판적 메시지까지 품게 된다.
일각에서는 악랄한 사이코패스 캐릭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작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적인 심리묘사가 과도한 공감과 폭력적 충동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에서는 개봉 전부터 모방 범죄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상영 중이던 콜로라도주 극장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악몽 때문이다.
‘조커’는 올해 제76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코믹스 영화로는 처음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러닝타임 123분 내내 혼신의 연기를 펼친 피닉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폭력 수위가 제법 센 편인데 국내 관람 등급은 15세 관람가로 매겨져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