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같은 4개월 전 ‘꿈의 무대’… 심상찮은 토트넘의 추락

입력 2019-10-02 17:34 수정 2019-10-02 17:58
바이에른 뮌헨 공격수 세르주 나브리가 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2차전 원정경기에서 후반 37분 세 번째 골을 넣어 해트트릭을 완성하고 있다. AP뉴시스

후반 37분. 독일 바이에른 뮌헨 왼쪽 수비수 티아고 알칸타라의 롱패스가 토트넘 중원 왼쪽으로 떨어졌다. 잉글랜드 토트넘 홋스퍼는 2-4로 뒤처진 흐름을 만회하기 위해 진영을 앞으로 바짝 끌어올렸다. 수비가 부족했다. 토트넘 수비수는 3명. 뮌헨 공격수도 3명이었다. 알칸타르의 패스는 동료 공격수 세르주 나브리 앞으로 정확하게 낙하했다.

나브리는 토트넘 수비진을 등지고 질주를 시작했다. 토트넘 수비수 3명 중 2명만이 나브리를 겨우 뒤쫓았다. 하지만 간격은 갈수록 벌어졌다. 나브리는 뻥 뚫린 토트넘 수비진을 비웃듯 35m가량을 질주한 뒤 페널티박스 안에서 속력을 줄였다. 이어 일대일로 맞선 토트넘 골키퍼 위고 요리스 오른쪽으로 오른발 슛을 낮게 깔아 차 골망을 흔들었다.

나브리는 2013년 잉글랜드 아스널에서 데뷔해 6년을 뛰었지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던 선수다. 이런 나브리가 해트트릭을 달성한 순간, 토트넘은 전의를 상실하고 무너졌다. 남은 8분의 정규시간 동안 만회골은커녕 두 골만 더 헌납했다. 뮌헨의 일곱 번째 골도 나브리의 몫이었다. 경기 종료 호각이 울린 순간, 전광판에 찍힌 스코어는 2대 7이었다.

토트넘이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하고 불과 4개월 만에 7실점 참패를 당하는 ‘약체’로 전락했다. 토트넘은 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20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2차전 홈경기에서 5골차 대패를 당했다. 토트넘은 정확히 4개월 전인 지난 6월 2일만 해도 스페인 마드리드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잉글랜드 리버풀에 0대 2로 졌지만, 창단 이후 처음으로 ‘꿈의 무대’를 밟고 유럽의 강자로 도약한 우승권 팀이 됐다.

하지만 올 시즌 이 대회 본선 2경기에서 1무 1패(승점 1)로 B조 최하위까지 추락했다. 16강 토너먼트 진출권은 각조 2위까지 주어진다. 지금의 흐름을 끊지 못하면 토트넘의 16강 진출을 낙관할 수 없다.

토트넘 홋스퍼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 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으로 독일 바이에른 뮌헨을 불러 가진 2019-20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2차전 홈경기에서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 AP뉴시스

토트넘의 부진은 유럽 클럽축구 32강이 싸우는 챔피언스리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 8월 시즌 개막 이후부터 부진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잉글랜드 팀이 출전할 수 있는 4개 대회 중 이미 한 대회에서 탈락했다. 지난달 25일 잉글랜드 리그컵대회인 카라바오컵 32강전에서 4부 리그 콜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대 4로 졌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부진하다. 지난 시즌 4위에 올라 ‘빅4(Big 4)’에 들었던 리그에서는 올 시즌 초반 한때 10위 안팎까지 떨어졌다. 지금은 순위를 겨우 만회한 6위(3승2무2·승점 11)다. 여러 대회에서 나타나는 부진을 보면 ‘슬로스타터’로 설명되지 않는 암울한 전망이 토트넘 앞에 펼쳐져 있다.

이 틈에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경질 여론에 휩싸였다 그렇게 어수선해진 팀 분위기는 전력 하락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토트넘은 포체티노 감독이 지휘권을 잡은 2014-2015시즌부터 지난 5시즌간 수비벽을 막강하게 세우고 상대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집념의 팀이었다. 후방에서 밀집수비를 펼쳐 기회를 만들고, 전방에서 집중력을 높여 공격을 전개했다.

이 투쟁심이 올 시즌 들어 사라졌다. 균열이 나오면서다. 가장 심각한 곳은 중원 한복판과 포백 수비라인의 좌우다. 미드필더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올여름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불거진 뒤부터 전의를 잃었다. 승승장구했던 지난 시즌에도 유일한 약점으로 꼽혔던 좌우 풀백 수비는 여전히 보강되지 않았다. 이날 좌우 측면 수비수는 서지 오리에와 대니 로즈였다. 4골을 넣은 나브리를 전담한 토트넘의 ‘마크맨’이 바로 오리에였다.

토트넘 홋스퍼 공격수 손흥민이 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으로 독일 바이에른 뮌헨을 불러 가진 2019-20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2차전 홈경기에서 전반 12분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AP뉴시스

수비 붕괴는 골키퍼를 흔들 수밖에 없다. 주전 골키퍼 요리스는 프리미어리그 통산 기록상 245경기에서 87경기를 클린시트(무실점 승리)를 기록하고 있는 수문장이다. 3경기 중 1경기는 반드시 클린시트를 쓸 만큼 방어력이 막강하다. 그랬던 요리스가 이날은 7골이나 내줬다. 그야말로 ‘자동문’이었다. 토트넘의 문제점은 그렇게 어느 한두 곳에서 찾을 수가 없을 만큼 심각하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토트넘은 지난 시즌에 정점을 찍은 뒤 올 시즌 하향 곡선에 들어간 팀이다. 내림세는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빠른 것이 문제”라며 “거금을 들여 탕귀 은돔벨레처럼 좋은 선수를 영입했지만, 정작 보강이 필요했던 중원이나 좌우 수비의 공백을 채우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토트넘의 유일한 희망은 손흥민이다. 손흥민은 이날 전반 12분 선제골을 넣었다. 그의 올 시즌 3호 골이었지만, 무너진 후방의 탓에 대패를 지켜봐야 했다. 영국 후스코어드닷컴은 손흥민에게 평점 7.7로 토트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