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구멍’에 방역 뚫렸다… 농식품부 파악 못한 소규모 농장서 ASF 확진

입력 2019-10-02 18:01 수정 2019-10-02 21:16
나흘만에 추가 확진…4차 발병농가 인근
파주시 2건 확진에 총 11건으로 늘어
소규모 무등록 농가, 방역망으로 막지 못해
파주 전체 살처분 포함 추가 대책 검토


한동안 잠잠하던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방역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집중방역이 이뤄지는 중점관리구역 안에 있는 경기 파주시 2개 농장이 잇따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모두 11곳으로 늘어난 확진 농장 중 11차 발생 농장은 흑돼지를 키우던 곳이다. 지방자치단체에 등록이 되지 않은 농장이다. 잔반을 사료로 주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내려진 이후에도 잔반을 먹여 왔고, 야생 멧돼지의 접근을 차단하는 울타리도 없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전파의 4대 요인 가운데 2가지나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

방역망을 흩트리는 데엔 허술한 관리체계도 한몫을 했다. 11차 농장처럼 지자체에 등록하지 않고 소규모로 돼지를 키우는 불법 농장은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개미 구멍’에 집중방역 벨트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경기 파주시 파평면에서 10차, 파주시 적성면에서 11차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판정 농장이 나왔다고 2일 밝혔다. 지난 27일 인천 강화군 화점면 돼지농장에서 발병이 확인된 이후 나흘만이다. 2400여마리를 사육하는 10차 농장의 경우 4차 농장(경기 파주시 적성면)과 역학 연결고리가 있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같은 도축장으로 출하했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같은 도축장 운반 차량이 드나들었는지 더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11차 농장은 환경부에서 예찰을 하다 축사로 의심되는 시설을 발견했다. 예방 차원에서 혈청을 뽑아 조사해 양성이 나왔다. 이 농장에선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안쪽에 철망을 설치한 뒤 흑돼지 18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원예농장 비닐하우스와 인삼밭으로 둘러 싸여 언뜻 보면 돼지농장으로 보기 힘들다고 한다.

11차 농장은 지자체에 등록된 곳도 아니었다. 4차 발생 농장과 5.2㎞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데도 방역 대상에서 빠진 이유다. 이 때문에 역학조사가 쉽지 않다. 국가동물방역시스템(KAHIS)에 등록돼 있지 않아 역학조사의 첫 단계인 차량 추적이 불가능하다.


돼지를 키우는 방식도 방역이나 감염병 차단에 취약했다. 이 농장에선 정부가 금지한 잔반을 먹이고 있었다. 농식품부는 지난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 첫 확진 사례가 나오자 전국적으로 잔반 급여를 금지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장주 진술에 따르면 확진 판정을 받기 열흘 전까지 잔반을 먹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울타리조차 없었다. 건물이 아닌 비닐하우스로 덮어 놓아 야생 멧돼지와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전파의 4대 요인(사람, 차량, 잔반, 야생 멧돼지) 가운데 2가지에서 구멍이 뚫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11차 농장과 같은 곳이 상당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축사 규모가 50㎡ 이상일 경우 지자체에 신고·허가를 받아야 한다. 규모가 큰 만큼 관리도 엄정하다. 반면 50㎡ 이하는 등록만 하면 되며 관리 체계도 상대적으로 부실하다. 11차 농장은 신고·허가 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축사 규모는 일반적으로 마리당 0.8㎡로 본다. 흑돼지 18마리를 키웠기 때문에 산술적으로만 본다면 14.4㎡ 정도 규모에 불과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규모를 실측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생각하지 못했던 ‘구멍’의 등장에 방역 당국 고민은 깊어졌다. 일단 농식품부는 오는 4일 오전 3시30분까지 경기도와 인천시, 강원도에 일시 이동중지명령을 내렸다. 3건으로 늘어난 파주시 확진 사례를 감안해 파주시 전체 살처분(76개 농장에 돼지 7만5500여마리)도 검토 중이다. 등록되지 않은 소규모 농장을 조사하는 작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방역 목적에서라도 일제 조사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