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만 말 바꾼 이춘재…“의심해 봐야”

입력 2019-10-02 15:30

화성연쇄살인사건 등 40여건의 중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한 이춘재(56)의 말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혐의를 전면 부인해온 태도가 약 1주 만에 급변한 데다 자포자기 심리·소영웅심리가 반영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조사에서 말을 바꾸거나 경찰의 주의를 화성사건에서 분산시키려는 계획일 수 있다.

2일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군대 전역 후인 1986년 1월부터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1994년 1월까지 8년 사이에 14건의 살인 사건과 30여건의 성폭행·성폭행 미수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총 10차례의 화성사건 중 모방 범죄로 드러난 8차 사건을 제외한 9건과 화성사건 앞뒤로 인근에서 발생한 3건, 청주에서 일어난 2건이다. 이들 범행은 모두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다. 다만 이씨는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5년째 수감돼 있다.

지난달 18일 유전자(DNA) 분석 결과에도 오리발을 내밀던 이씨의 태도는 지난주 중순 약 일주일만에 급변했다. 자백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고 계속 바뀌고 있다. 경찰은 “자백의 내용이 초기 단계이고 구체적인 사건의 기억이 단편적이거나 사건에 따라 범행 일시와 장소, 행위 등에 편차가 있어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그동안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던 이춘재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과 관련해 명확한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1994년 처제 살인사건 수사 때도 경찰에 자백했다가 검찰 조사 때 말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도 이씨는 경찰이 유전자(DNA) 증거를 들이밀며 거듭 추궁하자 범죄를 인정했지만 검찰에는 “경찰 강압 수사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이번에도 경찰이 DNA 증거를 제시하자 “DNA 증거가 나왔다니 할 수 없네요”라며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영웅심리’가 작용해 저지르지 않은 범죄사실을 자랑스레 늘어놨을 수도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춘재도 자신의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라며 “범죄자들이 경찰 대질심문 과정에서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이같이 거짓 진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1급 모범수 생활을 이어오던 이씨가 가석방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자포자기 심정으로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찰 주의를 돌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자백했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더 이상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자백했을 수도 있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찰에게 ‘범죄 보따리'를 풀어 화성사건에 전념하지 못하도록 만들 생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경찰은 이 씨의 과거 행적을 토대로 화성사건 앞뒤로 발생한 전국의 미제 살인·성범죄 사건을 살펴 사실관계를 따져볼 방침이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