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이런 날 올 줄 알았다”… 직접 그림 그려가며 설명

입력 2019-10-02 15:21 수정 2019-10-02 15:34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의 학창시절 모습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가 화성사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범죄를 털어놓은 가운데, 일부는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찰이 DNA 분석 결과를 알려주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와 내가 한 짓이 드러날 줄 알았다”며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고 한다.

경찰은 2일 수사진행 브리핑을 열고 “전날(1일) 이씨가 화성사건 외에 추가 살인 5건과 30여건의 강간과 강간 미수를 했다고 인정했다”며 “과거 기억을 되살려 그림까지 그려가며 진술했다”고 말했다.

또 경찰이 5, 7, 9차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이춘재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그는 “DNA 증거가 나왔다니 할 수 없네요”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도 부연했다.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던 태도를 바꿔 “언젠가는 이런 날이 와 내가 한 짓이 드러날 줄 알았다”며 화성사건을 포함해 14건의 살인을 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특히 경찰이 당시의 수사기록이나 증거물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이춘재는 직접 그림까지 그려가며 사건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재는 대체로 자신이 자백한 범행들의 시기와 장소를 특정했으며 범행이 이뤄진 장소를 직접 그려가며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한편 이춘재의 자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가 자백한 모든 범행은 군대에서 전역한 1986년 1월부터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검거된 1994년 1월까지 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이뤄졌다. 처음 저질렀던 범행은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에 이뤄졌음에도 이 많은 범행들을 이춘재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처럼 오래된 기억을 상세히 설명한 이춘재를 두고 ‘범행노트’와 같이 범행을 따로 기록해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혹은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에 일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범행 각각을 상세히 기억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다.

다만 경찰은 “아직 이씨가 범행을 적어놓은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범행노트가 따로 발견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춘재의 자백은) 오래 전 기억에 의존한 자백”이라며 “자백하고도 범죄를 저지른 시기나 장소를 기억하지 못하는 범행도 일부 있어서 자백한 범행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이춘재가 화성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후 여러 차례 이어진 대면조사에서도 완강히 혐의를 부인하던 그가 범행을 시인하는 데는 ‘라포르’(신뢰관계) 형성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라포르가 형성된 상황에서 이씨가 지난주부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임의로 자백하기 시작했다”며 “본인이 살인은 몇 건, 강간은 몇 건이라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경찰은 3차 사건의 증거물에 대한 DNA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상태다. 10차 사건부터 역순으로 4차 사건까지 이뤄진 DNA 분석에서 총 4건의 DNA가 검출됐고, 이춘재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춘재는 화성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연합뉴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