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최첨단이라더니…이춘재 DNA 분석장비 3년 전 도입됐다

입력 2019-10-02 11:10 수정 2019-10-02 11:14

화성연쇄살인사건 등 살인 14건을 자백한 이춘재(56)를 잡는 데 사용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유전자(DNA) 분석 장비들이 최소 3년 전 도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33년 전 미제사건의 DNA 분석을 왜 이제야 했느냐는 지적에 경찰과 국과수는 “최근 DNA 분석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한 덕”이라며 되레 자찬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최소 3년 전부터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던 게 드러난 것이다.

국민일보가 2일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과수는 이춘재 DNA 분석에 총 4가지 장비를 사용했다. 자동DNA추출기(QIAsymphony)와 DNA증폭기(ProFlex), 실시간유전자증폭기(AB7500), 자동DNA형분석기(AB 3500 XL)로 모두 DNA 분석에 흔히 사용되는 장비다. 자동DNA추출기와 DNA증폭기는 2016년, 실시간유전자증폭기와 자동DNA형분석기는 각각 2008년과 2010년 도입됐다. 임시근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50)는 “DNA 분석에 사용되는 장비·시약은 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며 “스마트폰 카메라 화소처럼 조금씩 성능이 개선된 정도”라고 설명했다.

경찰의 DNA 분석 의뢰만 빨랐다면 2016년이 되기 전에도 이춘재를 용의자로 특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임 교수는 “DNA 분석 기법으로만 따지면 2006년 4월 이춘재 공소시효 전에도 분석할 수 있었다”며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땐 불에 탄 시신의 DNA도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분석된 DNA의 대조군인 강력범죄자의 DNA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2010년 시작됐기 때문에 이춘재를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던 시기는 빨라도 2010년 이후였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8일 화성사건 유력 용의자 특정 발표 당시 경찰과 국과수는 첨단 DNA 분석 기술의 쾌거라며 공치사하기 급급했다. DNA분석 등 유전자 분석을 총괄하는 강필원(56) 국과수 법유전자과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DNA 분석 장비와 시약의 품질 등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국과수 DNA 분석관 노하우도 그동안 대형 사건·사고를 접하면서 크게 향상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DNA 분석은 최근 급진적으로 발전한 게 아니라 오랜 기간 점진적으로 발전했다고 지적한다. 기본적인 원리는 비슷하지만 정확도와 민감도, 속도 측면에서 매해 조금씩 발전했다는 것이다.

애초 경찰의 DNA 분석 의뢰가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7월에야 국과수에 화성사건 용의자 DNA 분석을 의뢰했다. 지난해 이곳에서 담당하는 미제사건 2건의 DNA가 검출된 것에 착안해 화성사건의 DNA 분석도 의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DNA 분석을 통한 장기 미제사건 해결은 수년 전부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사안이다. 2016년 ‘노원구 부녀자 강간살인 사건’의 범인이 18년만에 붙잡힌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찰 내부에서도 “국민적 관심사인 만큼 좀 더 빨리 재감정이 이뤄졌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과수는 경찰의 의뢰가 있었다면 2016년 이전에도 이춘재를 용의자로 특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며 답하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2016년 도입한 자동DNA추출기(QIAsymphony). 온라인 캡처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