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 한국 깔보던 일본 중년들 불안감에서 비롯”

입력 2019-10-02 10:59
일본의 소장파 정치학자가 일본에서 ‘혐한(嫌韓)’이 준동하는 배경으로 일본 중년 남성들의 불안감을 꼽았다. 과거 고도의 경제 성장을 체험하며 한국 등 이웃국가에 대한 우월감에 빠졌던 중년들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한국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등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는 것이다.

나카지마 다케시 교수. 유튜브 캡처

니시닛폰(西日本)신문은 1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나카지마 다케시(中島岳志·44) 도쿄공업대학 교수의 칼럼을 실었다.

나카지마 교수는 ‘주간포스트’ 등 일본 잡지들이 ‘한국은 필요 없다’거나 ‘대다수 한국인은 정신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식의 과격한 내용을 잇따라 발행하고 있다면서 그 배경에는 잡지의 주독자층인 50대 이상 중년 남성들의 불안감이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버블 경제를 경험한 세대는 일본이 경제대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하지만 경제규모에서 중국에 추월당하면서 국제 지위 저하에 직면하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특히 일본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던 나라를 적대시하고 깔보는 책이나 잡지 기사를 마치 마약처럼 탐닉하며 우월감을 계속 맛보려 한다”고 설명했다. 즉 우습게 생각했던 한국이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발전을 거듭하고 일본은 상대적으로 국력 저하를 맛보면서 양국 관계의 틀에 균열이 발생하자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카지마 교수는 “일본은 상대적인 전력 저하에 빠졌고 한국은 국력 성장을 바탕으로 자부심을 보이며 양국 간 힘의 균형이 크게 변화했다”면서 “이로 인해 정체성 혼란과 균열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신주쿠 혐한 시위. 유튜브 캡처

이럴 때 일수록 중장기적인 시각을 지닌 ‘냉정한 외교’가 절실한데 안타깝게도 일본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나카지마 교수는 “한국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선행 외교는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한 전직 외교관 다나카 히토시 일본종합연구소 전략연구센터 이사장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나카지마 교수는 일본은 ‘일본의 존재감 저하’를 냉정하게 마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한국과 일본은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가 합의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때처럼 ‘인내와 관용’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