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급등우려지역 정밀 타격하려는 숨고르기”
정부가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재건축·재개발 단지라도 분양가상한제를 피할 수 있는 길을 뚫어주면서 사실상 ‘한발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분양가와 주변 집값 상승을 이끌었던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에 ‘회피 통로’를 만들어준 셈이다. 당장 서울의 61개 재건축 단지가 분주해졌다. 특히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은 분양가상한제를 피하면서 내년 4월까지 최대한 분양 일정을 앞당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1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의 조건을 다소 완화한다고 밝혔다. 관리처분인가 단계에 있는 재건축·재개발 단지도 내년 4월 말까지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하면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난달 관리처분인가 단계의 재건축·재개발 단지에도 예외없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겠다며 ‘초강수’를 뒀던 것에 비해 강도가 약해졌다.
정부가 물러선 배경에는 ‘반대 여론’ ‘공급 위축 우려’가 있다. 지난달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확대안을 발표하자마자 사유재산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재건축 단지에 소급 적용을 하면 건물 철거·이주가 끝난 경우 사업포기가 어려워 개인 선택권과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40일의 입법예고 기간에 4949명이 관리처분인가 단계 사업 적용 제외, 소규모 사업 적용 제외 등을 내용으로 218건의 주요 의견을 제출하기도 했다.
박선호 국토부 1차관은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의 경우 분양가상한제를 즉시 적용하면 이미 철거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거나, 새 아파트의 입주시기를 고려해 임대차 계약을 정하고 있는 일부 주택보유자에 상당한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분양가상한제 확대가 바로 서울 집값 하락으로 이어지기엔 한계가 있는 만큼 부작용을 낮추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투기과열지구의 동 단위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는 등 임대차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 집값 급등우려지역을 정밀 타격하려는 숨고르기”라고 분석했다.
분양가상한제가 공급 축소를 일으켜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서울 강남·송파구 집값이 7월 1주부터 13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는 등 최근 국지적 과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광범위한 상한제 대신 ‘핀셋 상한제’에 해당하는 만큼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는 다소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단기적 공급 부족 우려에 따른 신축 주택 쏠림 현상은 다소 둔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번 보완책으로 반사이익을 얻은 관리처분 기인가 단지는 서울에만 61개 단지(약 6만8000가구)에 이른다. 서울 강동구 둔촌 주공과 강남구 개포 주공1단지,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동작구 흑석동 흑석3구역 등 강남권이 이득을 볼 지역이다. 일반분양 전인 단지들은 이달 말 주택법 시행령이 통과되고 6개월 후인 내년 4월 말까지 분양 일정을 앞당길 전망이다.
함 랩장은 “내년 4월까지 일반분양 속도를 높일 확률이 높아 실수요자들의 서울 정비사업 일반분양에 대한 관심과 공급 러시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 역시 “분양가상한제 규제를 피해 후분양에 나서기에는 시기적으로 촉박한 만큼 (이들 단지가) 선분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정건희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