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의 최측근 인사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 실현을 위해 호주 총리와 영국·이탈리아 정부에도 도움을 요청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대선판에서 제거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상에게 뒷조사를 사주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 국내 정치 위기를 타개하고자 외세를 끌어들인 사례가 추가로 드러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30일(현지시간) 두 명의 미 당국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로버트 뮬러 전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착수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는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게 협조할 것을 압박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뮬러 전 특검의 수사결과를 깎아내리기 위해 자신의 핵심측근인 바 장관이 수장으로 있는 법무부에 호주 정부가 갖고 있는 수사 과정 초기 정보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NYT는 “뮬러 전 특검 수사가 부패하고 당파성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대통령이 연방법 집행권과 정상외교를 남용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스캔들은 앞서 미 연방수사국(FBI) 조사에서 시작됐다. FBI는 러시아 정부가 2016년 미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흡집낼 수 있는 정보를 갖고 트럼프 대선캠프에 접촉했다는 호주 고위당국자의 제보를 받고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국자는 그해 5월 트럼프 캠프의 외교정책 고문이었던 조지 파파도풀로스와 술을 마시다 이 같은 사실을 들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에 대한 FBI의 조사는 제임스 코미 국장 해임이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결국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의 유착관계에 대한 뮬러 전 특검팀의 조사로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WP)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바 장관이 뮬러 전 특검의 수사착수 경위에 대한 법무부 조사에 협조를 구하기 위해 외국 정보기관들과 수차례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바 장관은 영국 정보기관 관리들에게 접근했으며, 지난주에는 이탈리아 고위 관리들을 현지에서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트럼프 측근들은 서방의 정보기관들이 파파도풀로스를 함정에 빠뜨렸다는 음모론을 제기해왔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또다른 핵심 측근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우크라이나 스캔들 개입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바이든 뒷조사’를 요구한 통화를 청취한 인사 중에 폼페이오 장관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사실일 경우 미 국무부도 ‘트럼프 탄핵조사’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는 사안이다.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유리한 국내 정치 지형을 조성하기 위해 외국 정부의 개입을 직접 주문했다는 사실이 연이어 알려지면서 미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CNN방송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찬성하는 미국인은 47%로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같은 조사에 비해 6%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탄핵 반대 응답은 5월 54%에서 9%포인트 하락해 45%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인들이 어린 시절부터 배우고 체화하는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국가’란 건국정신을 훼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