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서울 종로구와 서초구 등 집회·시위가 잦은 곳에 설치한 경찰버스 전용 전기공급시설 중 일부가 지난 1년동안 한번도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버스 시동을 걸어놓고 대기하면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와 소음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시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경찰청은 이 시설을 전국에 108곳 더 지으려 했지만 국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경찰청이 1일 대안정치연대 소속 정인화(전남 광양·곡성·구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경찰버스 전용 전기공급시설은 서울 시내 37곳에 설치돼 있다. 이 가운데 종로구 영풍빌딩 앞, 중구 동아일보 앞에 있는 전기공급시설의 지난해 이용량은 0kWh였다. 매주 집회가 열리는 세종대로 인근이지만 충전 시설을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41kWh), 여의도 국민은행 앞(147kWh), 서울역 헌혈의집 앞(284kWh) 시설 이용량은 서울 가구의 한 달 평균 전기 사용량(309kWh)보다 적었다. 지난해 총 사용량이 1000kWh 미만인 곳은 12곳(30%)으로 집계됐다.
그런데도 경찰청은 지난 4월 추가경정예산안에 ‘경찰경비활동사업’ 명목으로 62억4000만원을 편성해 전국 71개 지역에 전기공급시설 108대를 추가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주한미군 사드(THAAD)가 배치된 경북 성주 미군기지 앞, 경기도 평택 캠프험프리스 등 집회·시위가 종종 발생하는 곳도 있었지만 수원 광교 신도시 다산공원처럼 집회와는 별 연관성이 없는 지역도 있었다. 1대당 설치 비용은 4600만원으로 잡았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7월 국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때 “서울의 경우 연 20회, 그외 지역은 연 10회 이상 집회·시위가 발생하는 곳을 추려 설치 계획을 세웠다”며 “비용은 가장 최근에 설치한 3곳의 평균값을 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회는 108곳 중 64곳만 설치하는 조건으로 경찰청이 제출한 예산안에서 20억원 넘게 삭감했다. 이미 도입된 시설에 대한 철저한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경찰청 관계자는 “집회와 시위 흐름은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전기공급시설 소요도 광범위하게 필요하다”면서 “이용량이 없거나 적은 시설은 주변 교통량이 많아 의도적으로 충전을 안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하는 곳에서 전기를 충전할 수 있는 이동식 발전 차량이 있긴 하지만 대당 가격이 10억원에 달해 당장 도입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