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를 진행 중인 미국 하원이 루돌프 줄리아니 변호사에게 핵심자료를 제출하라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줄리아니는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변호사로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인물이다. 트럼프 행정부 2인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탄핵정국을 촉발시킨 미국-우크라이나 정상 통화를 직접 들었다는 폭로까지 나오면서 트럼프 탄핵 논란은 거세지고 있다.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엘리엇 엥겔 외교위원장, 일라이자 커밍스 개혁감독위원장과의 협의를 거쳐 3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 탄핵조사 일환으로 줄리아니에게 핵심 문건들에 대한 소환장을 전달하는 서한을 보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줄리아니는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외압 의혹의 ‘키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수사를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는데, 줄리아니는 이 통화 이후 우크라이나측 인사와 직접 만남을 가졌다. 내부고발자는 줄리아니를 우크라이나 스캔들 의혹의 ‘중심인물’(central figure)로 규정했다.
하원은 줄리아니가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외압 대리인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고, 그에게 문자메시지 및 통화기록 등 일련의 자료와 관련 문건 전부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제출 시한은 오는 10월15일이다.
줄리아니는 “사건을 예단하는 민주당 위원장들만 서명한 소환장을 받았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3개 위원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합리성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며 “그중에서도 변호사의 비밀유지 특권 등에 대한 헌법적·법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했다.
자료 제출 여부에 대해서는 “적절히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 자료 제출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지난 29일 언론 인터뷰에서 “시프 위원장에게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위원장들은 서한에 “(협조) 거부는 하원 탄핵조사 방해 증거로 여겨질 것”이라며 “당신과 대통령에게 불리한 추론을 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만약 줄리아니가 소환에 불응하면 하원은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법원은 징역형을 선고할 수도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미 하원이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트럼프 대통령과 젤레스키 대통령 간의 통화를 들었다는 폭로까지 나오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수사외압을 가했다고 알려진 통화를 청취한 행정부 인사 중에 폼페이오 장관도 있었다고 국무부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WSJ는 폼페이오 장관이 통화 청취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처음으로 알려졌다며 국무부가 탄핵조사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내부고발자가 제출한 고발장에는 통화 당시 백악관 정책 담당자 및 당직자 등 총 10여명이 상황실에서 이를 청취했다고 나와 있다. 외국 정상과의 관례적인 통화일 것으로 예상하고 별도로 접근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무부는 내부고발자의 이 같은 주장을 부인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탄핵정국 초기부터 관련 조사대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줄리아니는 지난 29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 것을 두고 “나 혼자 한 일이 아니다. 국무부의 부탁으로 했고 이걸 증명할 문자메시지를 갖고 있다”며 “국무부가 나에게서 도망치고 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정보위원회·정부감독개혁위원회는 이와 관련 지난달 27일 폼페이오 장관에게 오는 4일까지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라는 소환장을 보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촉발한 내부고발자를 색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유진 스칼리아 신임 노동부장관 취임식에서 “우리는 내부고발자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한 말은 완벽했다”며 “하지만 내부고발자는 전혀 다른 진술을 했다. 실제로 하지 않았던 말을 지어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탄핵 조사를 지휘하는 민주당 소속 시프 위원장에 대해서는 통화내용을 지어내 의회에서 위증했다고 주장하며 “엄청난 부패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민주당 진영이 악의적으로 주도한 부정부패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내부고발자 색출 시도에 미국 CNN방송은 “미국 법체계에서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사건의 증인을 위협하는 것은 수사 방해 시도로 비출 위험이 있다”며 “내부고발자는 익명성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원칙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