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날 기념식이 1년 만에 확 달라졌다. 축제 형식으로 진행된 지난해와 달리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F-35A가 처음으로 공개되는 등 안보를 강조하는 컨셉으로 바뀌었다. 세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등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주를 이룬 지난해와 비교해 현재 안보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청와대의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하는 등 안보 사고가 이어진 점도 고려됐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대구 공군기지에서 열린 ‘제71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우리 군의 철통 같은 안보가 대화와 협력을 뒷받침하고 항구적 평화를 향해 담대하게 걸을 수 있게 한다”며 “평화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군의 용기와 헌신이 있었기에 비무장지대 내 초소를 철거하고, JSA(판문점 공동경비구역)를 완전한 비무장 구역으로 만들 수 있었다”며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사상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남북 군사합의를 이끌어 내고 실천한 군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군의 안보 태세 확립과 함께 9·19 남북 군사합의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더 강력하고 정확한 미사일방어체계, 신형잠수함과 경항모급 상륙함, 군사위성을 비롯한 최첨단 방위체계로 우리 군은 어떠한 잠재적 안보 위협에도 주도적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며 강한 국방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또 “우리 군은 재래식 전력을 굳건하게 하는 한편, 최신 국방과학기술을 방위력에 빠르게 적용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안보태세를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역대 최초로 대구 공군기지에서 진행된 행사에는 일반에 처음 공개된 F-35A를 비롯해 공중통제기 E-737·첨단 UAV(무인정찰기), 패트리엇(PAC3)·M-SAM·현무 등 17종 30여 대가 참가했다. 대구 공군기지는 군의 주력 전투기인 F-15K의 모기지이자 제11전투비행단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으로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첫 한국형 기동헬기인 ‘수리온’을 타고 대구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이후 지상에 도열한 첨단무기들을 사열했다. 이날 F-15K 4대는 현장 출격해 독도와 서해 직도, 제주 마라도 영공 등을 각각 20분간 영공 수호 비행한 뒤 대구로 복귀해 문 대통령에게 임무 완수 보고를 했다.
이는 열병식과 전략무기 공개 없이 축제 형식으로 치러진 지난해 국군의날 행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기념식은 역대 처음으로 오후 ‘프라임 타임’에 개최돼 전국에 생중계됐다. 청와대는 당시 남북 관계 개선 분위기를 반영하고, 보훈의 격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당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진행된 기념식 말미에는 가수 싸이가 등장해 공연을 했다. 장병들이 야광봉을 들고 함께 춤을 췄다. 미래 전투수행체계 시연 순서에선 장병들이 화려한 LED 조명과 함께 가상 전투 시범을 보였다. 5년 주기로 대규모 병력과 전차·장갑차 등을 동원했던 시가행진은 생략됐다. 당시 야권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초라한 국군의 날”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청와대 측은 “결국 평화도 강한 안보에서 비롯된다는 대통령의 생각이 반영된 행사”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미 대화 분위기가 형성되는 상황에서 평화에 대한 정부의 기대는 여전히 크다”며 “지난해 파격적인 형식으로 기념식을 했으니 올해에는 우리의 국방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존 행사방식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이 행사를 기획했다고 한다. 탁 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오늘은 국군의 날”이라며 “오랜만에 영혼을 갈아넣었다”고 적었다.
특히 이날 공개된 F-35A는 북한이 연일 비판해 온 전투기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5일 홈페이지에 올린 ‘변함없는 선제공격 야망의 발로’라는 제목의 글에서 “공격형 무기의 도입에 대한 내외의 비난이 터지자 남조선당국이 계획에 따라 도입할 수밖에 없는 전투기니, 북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느니 하고 있지만 그 목적은 더는 변명할 여지도 숨길 수도 없다”면서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성격이 강했던 지난해 행사와 달리 강력한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정부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