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업은 조교입니다.”
전국 국공립대학 조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 설립에 나섰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국·공립대조교노동조합(이하 조교노조)은 지난 25일 고용노동부에 노조 설립 신고증을 제출했다.
국공립대 조교는 국가 예산으로 고용된 교육공무원이지만 구체적 임용 기준과 방식, 횟수 등은 학교마다 모두 달라 고용이 극히 불안정한 상태다. 또 학과 사무실에서 혼자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으며 연차·휴가 등에서도 제약이 상당하다.
조교에는 학생 조교와 비학생 조교가 있다. 차이는 학업 병행 여부로 나뉜다.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면 학생 조교로 분류되고 병행하고 있지 않다면 비학생 조교 즉 직업 조교로 분류된다. 흔히 조교 하면 대학원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 조교를 떠올리지만 실상 조교의 절대 다수는 직업 조교다. 조교 노조의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81.4%가 학업을 병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조교는 엄연한 직업이다. 하지만 편견 탓에 현실에서 조교는 전문 직업인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 불안과 만성적 과로에 시달리는 조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1년마다 재계약… 항상 불안한 조교들
조교들은 업무환경 개선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것으로 ‘고용 불안정’을 꼽았다. 고등교육법에 따라 조교들은 1년마다 재임용 심사를 거쳐야 한다.
영남지역 대학의 5년차 조교 A씨는 “(조교가) 1년마다 재임용을 거치는 계약직이다 보니 항상 불안하다”며 “(재임용에 대한 불안 때문에) 업무 외의 일도 눈치껏 찾아서 해야 되고 교수에게 밉보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크다”고 말했다.
A씨는 또 “1년 단위로 재임용이 이뤄지는 것도 불안하지만 학교에서 조교 임용 횟수에 제한을 두는 것도 큰 문제”라고 했다.
조교노조가 전국 국공립대 조교 14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3%가 임용 횟수에 제한이 있다고 답했다. A씨 역시 대학에서 조교 임명 횟수를 5회로 제한하고 있어 내년에는 타 학과 조교직에 지원하거나 학교를 옮겨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직을 준비하거나 미래에 대비해 다른 공부를 하는 조교들도 많다.
조교 B씨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퇴근 후 밤에는 공무원시험 공부를 한다”며 “학과 업무도 잘 맞고 조교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떠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수도권 대학의 2년차 조교 C씨 역시 “임용 횟수가 5회로 제한돼 있어 어차피 몇 년 뒤엔 나가야 한다”며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남권 대학 6년차 조교는 “교수는 조교를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는 일회용품쯤으로 생각한다”며 “특별한 사유 없이 재임용을 두고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과중한 업무에 교수 갑질도
조교들은 과중한 업무와 교수 갑질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조교노조의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과반(50.7%)이 ‘근무시간에 비해 과중한 업무’를 호소했다. 4명 중 1명(24.4%)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성폭력, 갑질, 채용 등의 비위 사례를 접했다’고 답했다.
4년차 조교 D씨는 “학과에서 조교를 한 명밖에 채용하지 않아 학과의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하고 있다”며 “때로는 학교나 본부 업무까지 떠안아서 하는 경우도 있어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업무 외에도 교수가 개인적인 일을 시키거나 ‘갑질’을 하는 경우도 많다”며 “한번은 (교수 본인의) 수업 평가가 안 좋게 나오자 나를 불러 화를 내며 해결책을 찾아오라고 한 경우도 있다. 교수의 연말정산을 조교에게 맡긴다던가 개인적 은행 업무를 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공립대 조교 중 대다수는 학과에서 혼자 근무하는 1인 노동자다. 홀로 학과 행정업무 대부분을 처리하기 때문에 주어진 연차 및 휴가 사용에도 제약이 많다.
4년차 조교 E씨는 “혼자 학과사무실에서 근무하다 보니 학기 중엔 당연히 연차를 못 쓰고, 금요일 오후 반차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라며 “아프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도 일단은 학교에 꼭 출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조교에 대한 성차별도
영남지역 대학의 5년차 조교 F씨는 결혼을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선다고 한다.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하면 학교에서 눈치를 주기 때문이다.
F씨는 “조교 업무가 보통 1인 업무이기 때문에 (조교가) 결혼이나 출산 등으로 빠지게 되면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며 “그래서 여성이 결혼하거나 출산을 하면 아예 (경력이) 단절돼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얘기했다.
조교노조의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여성 조교의 비율은 63.5%였다. 여성이 조교의 다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선 이들에 대한 성차별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여성 조교인 D씨는 “여성 조교들은 ‘학과의 꽃’이라 불리며 항상 예쁘게 꾸미고 다녀야 한다”며 “지각해도 좋으니 화장은 꼭 하고 다녀라, 여자는 다리가 예뻐야 한다 등 ‘얼평’(얼굴 평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노조 설립에 나선 조교들
조교노조가 제출한 노조 설립 신고증은 반려됐다. 공무원노조법상 국공립대 조교는 경찰, 군인 등과 함께 ‘특정직 공무원’에 해당해 노조 설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조교노조는 노조 설립을 위해 법 개정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조교노조는 “소방공무원의 단결권을 보장하는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의 취지에 비춰볼 때, 맡은 업무의 성격으로 보든 노동기본권 보장 필요성으로 보든 조교노동자들의 단결권·단체교섭권은 당연히 인정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합법적 지위 확보를 위해 서명운동, 청와대 국민 청원 등을 통한 법 개정 투쟁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국공립대 조교들은 공무원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며 “국정감사 이후 국회에 계류 중인 공무원노조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회 차원에서 법을 다시 검토해 해당 사안에 대한 개정 여부를 결정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한국노총 구자룡 조직부장은 “고용 불안정은 조교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 개선에 있어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문제 중 하나”라며 “일단 조교노조가 법내 노조로 진입하고 정당한 교섭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면 임용 기간이나 횟수 제한 등에 대한 논의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설희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