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의 경축 행사를 시작했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 공산당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 올해 국경절 행사에 온 신경을 쏟아왔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국경절을 경사가 아니라 ‘애도의 날’로 정하고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로 해 ‘갈라진 중국’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열사 기념일을 맞아 30일 오전 중국 지도부와 함께 천안문(天安門) 광장에서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헌화식을 갖고 선열을 추모했다. 시 주석은 엄숙한 표정으로 헌화한 뒤 열사 기념탑을 둘러봤다. 시진핑 지도부는 신중국 창건을 이끈 마오쩌둥 전 국가 주석 기념관도 방문해 참배했다.
시 주석과 중국 지도부는 앞서 2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신중국 70주년 국가 훈장 및 국가 명예 칭호 대상자 42명에 대한 시상식을 가졌다. 쿠바 공산당 총서기인 라울 카스트로에게도 우호 훈장을 줘 눈길을 끌었다.
시 주석은 시상식에서 “영웅을 존경해야 영웅이 생기고 영웅이 되려고 경쟁해야 영웅이 배출된다”며 “충성은 당과 인민의 사업을 위해 신념을 고수하고 중화민족의 부흥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중국 건국 70주년인 1일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과 시민 퍼레이드, 불꽃놀이 등이 진행된다. 열병식에는 육·해·공군과 로켓군 등 장병 1만5000여명이 참여하고, 각종 군용기 160여대, 군사 장비 580대가 동원된다.
특히 사거리가 1만2000∼1만5000㎞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41이나 신형 초음속 순항미사일 등 첨단무기를 대거 선보일 전망이다. 중국은 국경절 외에 오는 2일 중러 수교 70주년, 6일 북·중 수교 70주년 등 굵직한 행사들이 10월에 즐비하다.
중국의 건국 70주년은 사회주의 종주국인 구소련의 생존기간을 뛰어넘었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소련 공산당은 1922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 출범 후 1991년 소련 붕괴 때까지 69년 동안 집권했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70년간 중국을 통치해왔다.
미 중앙정보부(CIA)의 랜달 필립스 전 베이징 지부장은 “소련을 넘어선 것은 중국 공산당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며 “그들은 소련 붕괴 이후 피해망상에 시달렸기 때문에 소련보다 더 오래 버틴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밝혔다.
베이징 등 중국 전체가 국경절 축제로 떠들썩하지만 홍콩에서는 대규모 ‘애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홍콩 매체들에 따르면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국경절 오후 2시 빅토리아 공원에서 홍콩 도심 센트럴까지 행진하는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 단체는 국경절은 천안문 민주화 시위 희생자와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등 지난 70년간 중국에서 탄압받고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애도의 날’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간인권전선은 홍콩 시민들에게 국경절에 애도의 뜻으로 검은 옷을 입자고 제안했다. 홍콩 경찰은 폭력 시위가 우려된다며 집회를 불허했지만 이전처럼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는 애드머럴티, 완차이, 코즈웨이베이, 침사추이, 쌈써이포, 웡타이신, 췬완, 사틴, 툰먼 등 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예고했다. 코즈웨이베이 지역에서는 ‘국경은 없다, 국상만 있다’는 주제로 행진을 하고, 침사추이 지역에서는 검은 풍선을 하늘로 날리는 행사를 벌이기로 했다. 사틴 경마장 인근에서는 국경절 기념 경마를 방해하는 시위가 열린다.
30일 오후에는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에서 중고등 학생들의 동맹휴학 집회가 열렸다. 전날에는 완차이 지역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인도네시아인 여성 기자가 경찰이 쏜 고무탄 또는 빈백건으로 추정되는 물체에 오른쪽 눈을 심하게 다쳤다. 홍콩기자협회는 경찰의 고의적인 공격이라며 맹비난했다.
신화통신은 전날 홍콩의 우산혁명 5주년 시위와 관련해 2014년 홍콩에서 벌어진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 시위가 홍콩 법치주의 붕괴의 출발점이었다고 주장했다. 신화통신은 “혼돈은 홍콩의 경제와 안보에 직접적인 해를 미치고, 홍콩 시민의 마음속에 무정부 상태의 씨를 뿌린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